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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숙기(李淑琦)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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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공근(公瑾)
시호(諡號)정양(靖襄)
생년1429(세종 11)
졸년1489(성종 20)
시대조선전기
본관연안(延安)
활동분야무신 > 무신
이말정(李末丁)
공신호원종공신(原從功臣)
공신호적개공신(敵愾功臣)
공신호좌리공신(佐理功臣)

[상세내용]

이숙기(李淑琦)
1429년(세종 11)∼1489년(성종 20). 조선 초기의 무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공근(公瑾). 증연성부원군(贈延城府院君) 이말정(李末丁)의 아들이다.

1453년(단종 1)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원주부에 오르고, 1455년 세조가 즉위하자 참군(參軍)으로서 원종공신(原從功臣) 2등에 책록되고, 세조가전훈도(駕前訓導)로 선발되었다.

1456년(세조 2) 무과중시에 급제하여 사온서영(司醞署令)이 되었다.

1459년 평양판관, 1461년 영변판관이 되었다.

1467년 이시애(李施愛)함길도에서 난을 일으키자 진북장군(鎭北將軍) 강순(康純)휘하의 맹비장(猛裨將)으로서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워 절충장군에 특진되고, 난이 평정된 뒤 적개공신(敵愾功臣) 1등에 책록되어 전토와 노비를 하사받았다. 그리고 가정대부에 특진되어 이조참판이 되고 연안군(延安君)에 봉해졌다. 이해 겨울에 건주위(建州衛) 야인을 정벌하는 데 참여하여 또 공을 세웠다.

이듬해 함길남도절도사가 되고, 1470년(성종 1) 북청부사를 겸임하였으며, 1471년에는 좌리공신(佐理功臣) 4등에 책록되었다. 이어 동지중추부사를 거쳐 1475년 황해도관찰사가 되고, 이듬해 전라도병마절도사가 되었다.

1479년 다시 건주위 정벌에 참전하고, 그 공으로 이듬해 자헌대부로 승진하였다. 이해 전라도절도사로 있으면서 제주관리에게 부탁하여 말을 산 죄로 파직당하였다.

그뒤 복직되어 영안도(함경도)관찰사경상좌도병마절도사지중추부사를 거쳐 1487년 형조판서가 되었다.

이듬해 충청도관찰사에 임명되었다가 곧 교체되어 지중추부사가 되었다.

1489년 특진관에 임명되어 특히 영안도 5진에 대한 자문에 응하였으며, 이어 호조판서가 되었다.

성품이 강직하였으며, 사사로운 것 때문에 공을 버리지 않았다. 경상도지례(知禮)도동사(道東祠)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정양(靖襄)이다.

[참고문헌]

世祖實錄
睿宗實錄
成宗實錄
正祖實錄

[이미지]

[집필자]

신해순(申解淳)
대표명이숙기(李淑琦)
성명이숙기(李叔琦), 이숙기(李淑琦)

성명 : "이숙기(李叔琦)"에 대한 용례

전거용례
郯述v03李叔琦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