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중손(朴仲孫)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BC15C911C190B1412X0 |
자(字) | 경윤(慶胤) |
호(號) | 묵재(黙齋) |
시호(諡號) | 공효(恭孝) |
생년 | 1412(태종 12) |
졸년 | 1466(세조 12) |
시대 | 조선전기 |
본관 | 밀양(密陽)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박절문(朴切問) |
조부 | 박강생(朴剛生) |
공신호 | 정난공신(靖難功臣) |
[관련정보]
[상세내용]
박중손(朴仲孫)
1412년(태종 12)∼1466년(세조 12).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경윤(慶胤), 호는 묵재(黙齋).
찬성사(贊成事) 박강생(朴剛生)의 손자이며, 교서관정자 박절문(朴切問)의 아들이다.
1435년(세종 17)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집현전박사가 되고, 부수찬‧지제교를 거쳐 사인‧집의‧지병조사(知兵曹事)‧동부승지‧도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1453년(단종 1) 계유정난 때 수양대군을 도와 김종서(金宗瑞) 등을 제거한 공으로 정난공신(靖難功臣) 2등에 책록되고 응천군(凝川君)에 봉해지면서 병조참판에 제수되었다.
그러나 세종의 아들로 영빈강씨(令嬪姜氏) 소생인 사위 화의군(和義君) 영(瓔)이 수양대군을 반대하다 귀양가게 되어 한때 난처한 입장에 빠졌으나, 이어 한성부윤에 임명되었다.
그뒤 대사헌, 공조‧이조‧형조‧예조의 판서를 거쳐 밀산군(密山君)으로 개봉(改封)되었다. 세조초에 좌찬성에 승진되었고 세 차례에 걸쳐 고시관이 되어 많은 인물을 등용시켰다. 시호는 공효(恭孝)이다.
찬성사(贊成事) 박강생(朴剛生)의 손자이며, 교서관정자 박절문(朴切問)의 아들이다.
1435년(세종 17)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집현전박사가 되고, 부수찬‧지제교를 거쳐 사인‧집의‧지병조사(知兵曹事)‧동부승지‧도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1453년(단종 1) 계유정난 때 수양대군을 도와 김종서(金宗瑞) 등을 제거한 공으로 정난공신(靖難功臣) 2등에 책록되고 응천군(凝川君)에 봉해지면서 병조참판에 제수되었다.
그러나 세종의 아들로 영빈강씨(令嬪姜氏) 소생인 사위 화의군(和義君) 영(瓔)이 수양대군을 반대하다 귀양가게 되어 한때 난처한 입장에 빠졌으나, 이어 한성부윤에 임명되었다.
그뒤 대사헌, 공조‧이조‧형조‧예조의 판서를 거쳐 밀산군(密山君)으로 개봉(改封)되었다. 세조초에 좌찬성에 승진되었고 세 차례에 걸쳐 고시관이 되어 많은 인물을 등용시켰다. 시호는 공효(恭孝)이다.
[참고문헌]
端宗實錄
世祖實錄
國朝人物考
海東野言
世祖實錄
國朝人物考
海東野言
[집필자]
송정현(宋正炫)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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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