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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침(南宮枕)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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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성중(誠仲)
생년1513(중종 8)
졸년1567(선조 즉위)
시대조선전기
본관함열(咸悅)
활동분야문신 > 문신
남궁익(南宮翼)

[상세내용]

남궁침(南宮枕)
1513년(중종 8)∼1567년(선조 즉위).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함열(咸悅). 자는 성중(誠仲).

부친은 동복현감(同福縣監) 남궁익(南宮翼)이다.

1540년(중종 35)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1544년 사간원정언을 역임중 세자시강원사서로 체직되었다.

1546년(명종 1) 지평헌납부수찬에 이어 1547년에 홍문관수찬에 승진하였다. 같은해 지평에 재직시 도성에 도적이 범람하는데도 이를 알지 못하였다는 사간원의 탄핵을 받고 홍문관교리에 체직되었다.

그러나 지평으로 개수되고, 1548년에는 홍문관부수찬에 이어 강원도암행어사로 파견되어 원주 등지의 구황실태를 조사하고 돌아왔다.

같은해 홍문관수찬지제교 겸 경연검토관(弘文館修撰知製敎兼經筵檢討官)이조좌랑이 되었다.

1549년에는 사인(舍人)부응교(副應敎)가 되었고, 『중종실록』의 편찬에 춘추관기사관으로 참여하였다.

1552년 홍문관전한을 거쳐, 경상도어사로 파견되어 민생의 고충을 탐문하였으며, 지방수령들의 탐학을 적발하고 돌아와 홍문관직제학에 승진, 같은해 통정대부에 승진하면서 승정원우부승지로 발탁되었다.

그뒤 5년여에 걸쳐 승정원의 소임을 맡다가 1557년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이듬해 진위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같은해 장례원판결사개성부유수를 거쳐 1563년 한성부우윤한성부좌윤전라도관찰사를 역임하였다.

1565년 함길도관찰사로 나갔다가 이듬해 한성부좌윤동지중추부사한성부판윤이 되었다. 문정왕후(文定王后)의 죽음과 함께 외척으로 정권을 전단한 영의정 윤원형(尹元衡)이 실각되면서 사헌부로부터 윤원형에 아부하고 윤원형과 함께 구수담(具壽聃)을 모살하였다는 탄핵을 받고 파직되었다.

그뒤 곧 복직되고, 1567년경 오위도총부부총관으로서 명종 사망, 선조 즉위의 치안유지에 기여하였다.

1567년 형조참판을 역임하다가 죽었다.

[참고문헌]

中宗實錄
明宗實錄
韓國人의 族譜(日新閣, 1977)

[집필자]

한충희(韓忠熙)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