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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호신(任虎臣)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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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무백(武伯)
시호(諡號)정간(貞簡)
생년1506(중종 1)
졸년1556(명종 11)
시대조선전기
본관풍천(豊川)
활동분야문신 > 문신
임추(任樞)
조부임유겸(任由謙)

[상세내용]

임호신(任虎臣)
1506년(중종 1)∼1556년(명종 11).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무백(武伯). 판서 임유겸(任由謙)의 손자로, 호조참판 임추(任樞)의 아들이다.

1528년(중종 23) 유생전강(儒生殿講)때 『대학』으로 합격하고, 1531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예문관검열대교, 1533년에 세자시강원설서가 되어 동지사인 아버지의 서장관으로 북경에 다녀와서 예문관봉교가 되었으나 권신 김안로(金安老)에 의하여 황간현감으로 쫓겨났다.

1538년 사간원헌납, 시강원필선을 거쳐 1541년 의정부검상, 이듬해 충청도진휼경차관으로 나가 가흥창(可興倉)‧아산창(牙山倉)의 곡식으로 기민을 진휼하도록 하는 한편, 수령‧방백을 문책하였다.

1543년 도원수 이기(李芑)종사관(從事官), 사간, 황해도재상어사로 나가 지방관의 탐학상을 지적, 견책하도록 하였다.

1544년 사헌부집의가 되었으나 신병으로 사직하였다. 이어 군자감정(軍資監正)홍문관직제학, 1545년(명종 즉위)에 우부승지경연참찬관을 겸하고, 1546년에 우승지도승지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랐다.

1547년 한성부우윤이 되어서는 정미조약의 체결을 반대하였고 경상도관찰사가 되었다.

1550년 동지중추부사동지춘추관사를 겸하고 『중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1551년에 성절사(聖節使)명나라에 다녀오고 이때 청백리에 녹선(錄選)되었다.

1552년 경연특진관, 이듬해 한성부좌윤, 1554년 우윤을 거쳐 1555년 형조판서에 제수되었으나 신병으로 사직하였다.

1556년 호조판서에 기용되었으나 다시 병으로 사직하고 지돈녕부사로 죽었다. 청정(淸淨)하고 신중함이 뛰어나다는 평을 받았다. 시호는 정간(貞簡)이다.

[참고문헌]

中宗實錄
仁祖實錄
明宗實錄
國朝榜目
海東名臣錄
知退堂集

[집필자]

이봉래(李鳳來)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