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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순(庾昌淳)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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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사원(四源)
호(號)송은(松隱)
생년1876(고종 13)
졸년1927
시대조선후기
본관무송(茂松)
활동분야호국 > 독립운동가
출신지충청남도 천원
공훈건국훈장 국민장

[상세내용]

유창순(庾昌淳)
1876년(고종 13)∼1927년. 독립운동가. 본관은 무송(茂松). 자는 사원(四源), 호는 송은(松隱). 충청남도 천원 출신.

역사와 위인의 사적을 통하여 애국심을 길렀다.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체결되고 일제의 침략이 심화되자, 이듬해 홍주에서 기의하였다.

1913년 영주군 풍기에서 채기중(蔡基中)유장렬(柳漳烈)한훈(韓焄)강병수(姜炳洙)김상옥(金相玉)정진화(鄭鎭華)이각(李覺) 등과 비밀결사 대한광복단을 조직하여 일본총독부의 요인과 친일분자를 몰아내기 위하여 군자금을 모금하고 무기를 구입하였다.

1915년 7월 대구에서 활동하던 박상진(朴尙鎭)양제안(梁濟安)우재룡(禹在龍)권영만(權寧萬)김경태(金敬泰)김한종(金韓鍾)엄정섭(嚴正燮) 등과 제휴하여 대한광복회로 개칭하였다.

1916년 노백린(盧伯麟)김좌진(金佐鎭)신현대(申鉉大)윤홍중(尹洪重)신두현(申斗鉉)김정호(金鼎浩)권태진(權泰鎭)임병한(林炳翰)윤형중(尹瀅重)김홍두(金弘斗)윤치성(尹致晟)이현(李鉉)박성태(朴性泰)기명섭(奇明燮) 등을 규합하여 다시 광복단으로 개칭하였다.

1917년 11월 총사령 박상진의 명령을 받고 채기중임봉주(林鳳柱)강순필(姜順弼) 등과 같이 군자금모금에 협조를 거부하고 방해한 경상북도 칠곡의 친일부호 장승원(張承遠)을 사살하고, 경상남도의 재산가를 조사하여 명단을 가지고 우재룡중국에 보내어 광복단의 취지와 포고문을 국내로 발송하게 하여 군자금모금에 힘썼다.

이종국(李鍾國)의 밀고로 광복단의 활동이 일본경찰에 탐지되어 1918년 1월 박상진김한종임세규(林世圭) 등과 같이 잡혀 투옥되었다가 그뒤 가출옥되었으나 옥고로 얻은 병으로 순국하였다.

1963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高等警察要史(慶尙北道警察部, 1934)
大韓民國獨立運動功勳史(金厚卿‧申載洪, 韓國民族運動硏究所, 1971)
독립운동사자료집 11(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6)

[집필자]

정원옥(丁原鈺)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