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치검색 표제어 전체
검색
김한종(金漢鍾)

[요약정보]

UCIG002+AKS-KHF_13AE40D55CC885B1883X0
자(字)경수(敬受)
호(號)일우(一宇)
생년1883(고종 20)
졸년1921
시대항일기
본관김녕(金寧)
활동분야호국 > 독립운동가
김재정(金在貞)
출신지충청남도 예산
공훈건국훈장 국민장

[상세내용]

김한종(金漢鍾)
1883년(고종 20)∼1921년. 독립운동가. 본관은 김녕(金寧). 자는 경수(敬受), 호는 일우(一宇). 충청남도 예산 출신.

의병장 민종식(閔宗植)의 휘하에서 소모관(召募官)으로 활약한 김재정(金在貞)의 맏아들이다. 어려서부터 한학을 공부하였으며, 국권이 일제에 의하여 침탈당하자 구국을 맹세하고 1915년 박상진(朴尙鎭)우재룡(禹在龍)권영만(權寧萬)양제안(梁濟安)김경태(金敬泰) 등과 함께 대구에서 무장독립 비밀결사인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를 조직하였다.

대한광복회는 1916년 노백린(盧伯麟)김좌진(金佐鎭) 등 동지를 규합하여 대한광복단(大韓光復團)으로 개칭하였다. 대한광복단의 충청‧전라지부장으로 임명되어 총사령 박상진과 더불어 각지의 부호로부터 국권회복운동의 자금을 거두었다.

1918년 1월에는 김경태임봉주(林鳳柱)를 파견하여 친일 악질관리인 충청남도 아산의 도고면장(道高面長) 박용하(朴容夏)를 사살하였다. 그해 1월 광복단의 조직이 발각되면서 일본경찰에 붙잡혔다.

그뒤 대구공주서울 등 감옥에서 혹독한 고문과 옥고를 겪다가 1921년 8월에 총사령 박상진과 함께 처형되어 순국하였다.

1963년에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韓國獨立運動史 2(國史編纂委員會, 1966)
독립운동사 7(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6)
독립운동사자료집 11(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6)

[집필자]

김광남(金光男)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