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현(金在顯)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AE40C7ACD604B1808X0 |
자(字) | 덕부(德夫) |
생년 | 1808(순조 8) |
졸년 | 1899(광무 3)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광산(光山)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김기순(金箕詢) |
[관련정보]
[상세내용]
김재현(金在顯)
1808년(순조 8)∼1899년.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덕부(德夫).
부친은 김기순(金箕詢)이며, 부승지 김주현(金疇鉉)의 아버지이다.
안의현감(安義縣監)을 지낸 뒤 1858년(철종 9)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여 이듬해 사간원대사간이 되었다. 고종조에 들어와서는 형조판서를 지낸 다음 1872년(고종 9) 경기도관찰사로 부임하여 도내의 산군(山郡)에도 해읍(海邑)과 똑같은 포군(砲軍)을 설치하는 등 국방을 튼튼히 하였으며, 탐학한 삭녕군수(朔寧郡守) 김두하(金斗河)를 단죄하여 기강을 바로잡았다.
그뒤 이조‧예조‧호조‧공조의 판서와 한성부판윤을 차례로 역임한 뒤 1891년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로 치사하였다.
또한, 문장에도 뛰어나 홍문관‧예문관의 제학 등 문한직(文翰職)에 있으면서 임금의 많은 교문(敎文)을 제술하기도 하였다. 시호는 효문(孝文)이다.
부친은 김기순(金箕詢)이며, 부승지 김주현(金疇鉉)의 아버지이다.
안의현감(安義縣監)을 지낸 뒤 1858년(철종 9)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여 이듬해 사간원대사간이 되었다. 고종조에 들어와서는 형조판서를 지낸 다음 1872년(고종 9) 경기도관찰사로 부임하여 도내의 산군(山郡)에도 해읍(海邑)과 똑같은 포군(砲軍)을 설치하는 등 국방을 튼튼히 하였으며, 탐학한 삭녕군수(朔寧郡守) 김두하(金斗河)를 단죄하여 기강을 바로잡았다.
그뒤 이조‧예조‧호조‧공조의 판서와 한성부판윤을 차례로 역임한 뒤 1891년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로 치사하였다.
또한, 문장에도 뛰어나 홍문관‧예문관의 제학 등 문한직(文翰職)에 있으면서 임금의 많은 교문(敎文)을 제술하기도 하였다. 시호는 효문(孝文)이다.
[참고문헌]
哲宗實錄
高宗實錄
國朝榜目
高宗實錄
國朝榜目
[집필자]
박민영(朴敏泳)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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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2010-02-11 | [고종실록] 고종 36년 7월 6일조를 참고하여 시호 효문(孝文)을 추가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