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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삼(趙秀三)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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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명(初名)조경유(趙景濰)
자(字)자익(子翼)
호(號)추재(秋齋)
호(號)경원(經畹)
생년1762(영조 38)
졸년1849(헌종 15)
시대조선후기
본관한양(漢陽)
활동분야문학 > 시‧시조인
조원문(趙元文)
저서『추재집』

[상세내용]

조수삼(趙秀三)
1762년(영조 38)∼1849년(헌종 15). 조선 후기의 여항시인(閭巷詩人). 본관은 한양(漢陽). 초명은 조경유(趙景濰). 자는 지원(芝園)자익(子翼), 호는 추재(秋齋)경원(經畹). 가선대부 한성부좌윤 겸 오위도총부부총관(漢城府左尹兼五衛都摠府副摠管)에 추증된 조원문(趙元文)의 아들이며, 여항시인 조경렴(趙景濂)의 동생이고, 조선 후기의 화원(畵員)인 조중묵(趙重黙)은 그의 손자이다.

구자균(具滋均)『한국평민문학사(韓國平民文學史)』에서 그의 신분을 서리(胥吏)일 것이라고 추정하였으나 확실한 근거는 없고, 대개 역과중인(譯科中人)출신으로 알려지고 있다.

신분의 제한으로 1844년(헌종 10) 83세의 나이로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송석원시사(松石園詩社)의 핵심적인 인물로 활동하였으며, 정이조(丁彛祚)이단전(李亶佃)강진(姜溍)조희룡(趙熙龍)김낙서(金洛瑞)장혼(張混)박윤묵(朴允黙) 등 여항시인과 사귀었으며, 김정희(金正喜)김명희(金命喜)조인영(趙寅永)조만영(趙萬永)한치원(韓致元)남상교(南尙敎)이만용(李晩用) 등 당시의 쟁쟁한 사대부들과도 친밀히 지냈다.

특히, 조인영조만영풍양조씨 세도정치의 중추인물이었는데, 조수삼의 후원자 역할을 하였다.

관력(官歷)이 없는 조수삼의 생애는 여행으로 특징지어지는데, 1789년(정조 13) 이상원(李相源)을 따라 처음으로 중국에 간 이래 여섯 차례나 연행(燕行)하여, 당대 중국의 일류문사인 오숭량(吳崇梁)유희해(劉喜海)강련(江漣)주문한(朱文翰) 등과 사귀었다.

그리고 전국에 발 닿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국내 각지를 빠짐없이 여행하여 많은 시들을 남겼다.

그의 시는 대개 전기‧후기로 나누어볼 수 있는데 전기에서는 생활주변이나 자연을 소재로 하여 대상과의 조화를 추구한 작품들이 대부분이나, 후기로 올수록 사회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품들이 많아지며, 장편시들도 눈에 뜨이게 양산되고 있다. 이에 대하여 김정희두보(杜甫)의 시풍과 근접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홍경래(洪景來)의 난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서구도올(西寇檮杌)」, 관북지방을 여행하면서 당시 민중의 비참한 생활상을 묘파한 「북행백절(北行百絶)」 등이 이러한 시풍을 대변하는 것이 될 것이다.

이밖에도 「석고가(石鼓歌)」‧「억석행(憶昔行)」‧「병치행(病齒行)」 등도 장편거작으로 인구에 회자되었던 작품이다. 그리고 주로 당시의 도시하층민들의 생기발랄한 모습을 산문으로 쓰고 칠언절구의 시를 덧붙인 형식으로 되어 있는 「추재기이(秋齋紀異)」, 중국 주변의 여러 나라에 대한 짧은 산문과 시의 결합으로 구성되어 있는 「외이죽지사(外夷竹枝詞)」 등은 한문학사상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품들이다.

저서로는 『추재집』 8권 4책이 있다.

[참고문헌]

秋齋集
壺山外記
里鄕見聞錄
韓國平民文學史(具滋均, 高麗文化社, 1948)

[집필자]

강명관(姜明官)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