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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룡(趙熙龍)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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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치운(致雲)
호(號)석감(石憨)
호(號)철적(鐵笛)
호(號)단로(丹老)
호(號)호산(壺山)
호(號)매수(梅叟)
생년1789(정조 13)
졸년1866(고종 3)
시대조선후기
본관평양(平壤)
활동분야미술 > 화가
출생지서울

[상세내용]

조희룡(趙熙龍)
1789년(정조 13)∼1866년(고종 3). 조선 후기의 화가. 본관은 평양(平壤). 자는 치운(致雲), 호는 우봉(又峰)석감(石憨)철적(鐵笛)호산(壺山)단로(丹老) 또는 매수(梅叟). 서울 출생. 김정희(金正喜)의 문인이다.

헌종의 명을 받아 금강산의 명승지를 그렸으며, 1854년에는 전라도 임자도(荏子島)에 유배되었다. 시‧글씨‧그림에 모두 뛰어난 재주를 보였다. 글씨는 추사체(秋史體)를 본받았고 그림은 난초와 매화를 특히 많이 그렸다. 난초 역시 김정희의 묵란화(墨蘭畵)의 정신을 본받아 그렸다.

『석우망년록(石友忘年錄)』이라는 자서전적인 저술과 그 당시의 미천한 계층 출신의 인물 중 학문‧문장‧서화‧의술‧점술에 뛰어난 사람들의 행적을 기록한 일종의 열전적인 저술인 『호산외사(壺山外史)』를 남겼다.

특히, 여기에 수록된 일곱명의 화가(김홍도‧회북‧임회지 등)들에 대한 비교적 상세한 인물묘사와 그들 상호간의 교우관계의 기록은 조선 후기의 회화사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유작 중 가장 많은 수가 매화그림인데 이와같은 자신의 매화화벽(梅花畵癖)을 『석우망년록』에 상세히 적었다. 즉, 자신이 그린 매화병풍을 방 안에 둘러치고 매화를 읊은 시가 새겨져 있는 벼루와 매화서옥장연(梅花書屋藏烟)이라는 먹을 사용했으며, 매화시백영(梅花詩百詠)을 지어 큰 소리로 읊다가 목이 마르면 매화편차(梅花片茶)를 달여 먹었다.

그리고 자기 거처를 매화백영루(梅花百詠樓)라고 이름짓고 자신의 호를 매수(梅叟)라고 하였다. 현재 간송미술관 소장의 「매화서옥도(梅花書屋圖)」는 이와같은 그의 생활 주변의 모습을 표현한듯한 재미있는 그림이다. 매화그림 중 그의 새로운 구도적 특징을 잘 나타내는 것은 길고 좁은 축화(軸畵)형식의 그림이다.

그 대표적인 예로 「홍매대련(紅梅對聯)」을 들 수 있는데 굵은 노수간(老樹幹)이 힘찬 용의 꿈틀거림과 같이 두세번 크게 굴곡지면서 화폭의 높이를 가득 채우고 그 중 몇 군데로부터 꽃을 가득히 피운 가느다란 가지들이 사방으로 힘차게 뻗어나가 주간(主幹)과 서로 대조와 조화를 이룬다.

비백법(飛白法)을 사용한 수간에는 역시 대조되는 윤묵(潤墨)의 짙은 점을 찍어 요소요소를 강조하였으며 매화꽃은 몰골법(沒骨法)으로 그렸다. 그의 백매화(白梅畵)는 율동적인 경쾌한 붓놀림으로 꽃잎 하나하나의 윤곽선을 그리고 예리한 선으로 꽃술을 장식하였다.

이들 그림에는 항상 추사체 글씨의 화제(畵題)를 곁들여 묵인화다운 운치를 더욱 북돋았다. 그의 목매화는 사임당 신씨(師任堂申氏)이래의 조선 중기 묵매도의 구도에서 탈피하여 후기 묵매화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였다.

김정희조희룡의 난초그림이 서법에 의한 문인화답지 않게 아직도 화법만을 중시하는 태도를 면하지 못하였다고 낮게 평가하였지만, 그의 묵란화들을 보면 절제 있고 힘찬 필선으로 된 우수한 작품들이 많다.

[참고문헌]

石友忘年錄
壺山外史
阮堂先生全集
槿域書畵徵
韓國繪畵大觀(劉復烈, 文敎院, 1969)
우리나라의 옛 그림(李東洲, 博英社, 1975)
韓國의 美―山水畵 下―(安輝濬監修, 中央日報社, 1982)

[집필자]

이성미(李成美)
대표명조희룡(趙熙龍)
성명조희룡(趙煕龍)

성명 : "조희룡(趙煕龍)"에 대한 용례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