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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혼(張混)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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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원일(元一)
호(號)공공자(空空子)
생년1759(영조 35)
졸년1828(순조 28)
시대조선후기
본관결성(結城)
활동분야학자 > 유생
장우벽(張友璧)
증조부장필한(張弼漢)
저서『비단집(篚段集)』
저서『이이자초(而已自艸)』
저서『동사촬요(東史撮要)』
저서『이이엄집』

[상세내용]

장혼(張混)
1759년(영조 35)∼1828년(순조 28). 조선 후기의 학자‧시인. 본관은 결성(結城). 자는 원일(元一), 호는 이이엄(而已厂) 또는 공공자(空空子).

장우벽(張友璧)의 아들로 서울에서 대대로 살던 중인출신이다.

그의 증조인 장필한(張弼漢)은 유명한 위항시인(委巷詩人)으로 『소대풍요(昭代風謠)』에 시가 실렸고, 아버지 장우벽은 문음으로 통례원(通禮院) 우통례(右通禮)에 보직되었으나 곧 그만두고 가객으로 일생을 보냈다고 한다.

아들 장창(張昶)장욱(張旭), 손자 장효무(張孝懋)도 시로 이름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상당한 문학세가였음을 알 수 있다.

어린시절부터 지극한 효자로 이름이 났다. 그는 특히 시에 천재적인 소질을 보여 그가 시 한수를 지으면 서로 읊어 전해지고는 했다고 한다.

1790년 정조가 감인소(監印所)를 설치하자 대제학이던 오재순(吳載純)의 추천으로 교서관사준(校書館司準)이 되어 서적편찬에 종사하였다.

이후 1816년경까지 여기에서 근무하면서 사서삼경을 비롯한 수많은 어정서(御定書)를 교정하였고, 『율곡전서』 등 문집류를 수교(修校), 간행하였다.

인왕산 옥류동(玉流洞)골짜기에 ‘이이엄’이라는 집을 짓고 자기와 같이 중인에 속하는 위항시인들과 더불어 시주(詩酒)를 즐겼다.

1786년 여름에 천수경(千壽慶) 등과 함께 송석원시사(松石園詩社)를 결성하여 그 모임을 이끌어가는 중추적 구실을 담당하였다.

1797년에는 천수경과 더불어 『풍요속선(風謠續選)』을 간행하기도 하였다. 그는 또한 이이엄활자라는 목활자를 만들어 사용하였는데 이것으로 그의 수많은 편저들을 인쇄하고, 주변의 위항시인들의 시문집을 간행하였다.

그의 편저작은 대단히 많은데 『호산외기(壺山外記)』에 책명이 소개되어 있다. 자신의 문집 『비단집(篚段集)』 20권이 있었으나 현재 전하지 않고 중국의 고대로부터 명대(明代)까지의 시가를 수집, 분류한 『시종(詩宗)』『당률집영(唐律集英)』『이견(利見)』『아희원람(兒戱原覽)』『몽유편(蒙喩篇)』『근취편(近取篇)』『절용방(切用方)』『동습수방도(童習數方圖)』 등이 간행되었다. 『고문가칙(古文柯則)』『정하지훈(庭下至訓)』『대동고식(大東故寔)』『소단광악(騷壇廣樂)』『초학자휘(初學字彙)』『동민수지(東民須知)』『문단성보(文壇姓譜)』『제의도식(祭儀圖式)』 등이 가장(家藏)되어 있었다고 하나 전하지 않는다. 현재 전하는 것으로는 『이이자초(而已自艸)』『동사촬요(東史撮要)』가 있으며 문집 『이이엄집』 14권이 전한다.

장혼의 저술은 상당히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있는데 특히 아동용 교과서가 많은 양을 차지하고 있어서 주목된다. 그 중 『계몽편(啓蒙篇)』은 1913년에서 1937년까지 열 차례나 간행되어 아동교육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인다.

그의 시는 표현이 새롭고 용어의 구사가 자유롭다는 평을 받았으며, 특히 고체(古體)에 뛰어났다.

[참고문헌]

壺山外記
逸士遺事
朝鮮平民文學史(具滋均, 高麗文化社, 1948)
平民文學을 復興한 張混先生(安廓, 朝鮮日報, 1929. 3.)
近世的 文人 張混에 대하여(具滋均, 文理論集 7, 高麗大學校, 1963)

[집필자]

고경식(高敬植)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