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치검색 표제어 전체
검색
서명선(徐命善)

[요약정보]

UCIG002+AKS-KHF_13C11CBA85C120B1725X0
자(字)계중(繼仲)
호(號)동원(桐源)
시호(諡號)충헌(忠憲)
생년1728(영조 4)
졸년1791(정조 15)
시대조선후기
본관대구(大丘)
활동분야문신 > 문신
서종옥(徐宗玉)

[상세내용]

서명선(徐命善)
1728년(영조 4)∼1791년(정조 15).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대구(大丘). 자는 계중(繼仲), 호는 귀천(歸泉)동원(桐源). 이조판서 서종옥(徐宗玉)의 아들이다.

1753년(영조 29) 생원이 되고, 1763년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곧 홍문관 부교리에 초수되고, 다음날 왕의 특명에 의해서 교리가 되었다.

1764년 홍문관 관원들이 올린 상소로 왕의 노여움을 사서 홍낙명(洪樂命) 등 8명과 함께 갑산부에 일시 유배되었다. 곧 재기용되어 지평헌납부교리‧풍산만호(豊山萬戶)‧응교 등을 역임하였다.

1767년 지제교(知製敎)의 능력을 평가하는 시험에서 우등하여 말을 하사받았고, 중시(重試)에서 병과로 급제하기도 하였다. 이후 부교리‧승지를 거쳐 1769년 강원도관찰사가 되었으나 삼촌이 피체되자 연루되어 체직당하였다. 이어서 이조참의대사성대사헌‧승지‧부제학을 역임하고 이조참판이 되었다.

1775년 일시 한직에 밀려났으나 세손의 대리청정을 반대하는 홍인한(洪麟漢)일파를 탄핵하여 세손의 대리청정을 시행할 수 있도록 크게 노력하였다.

이때의 공으로 세손에 의해 발탁되어 예조판서병조판서이조판서 등의 요직을 역임하였다.

정조가 즉위하자 더욱 중용되어 수어사(守禦使)총융사(摠戎使)를 겸임하여 군사권까지 장악하였고, 우참찬판돈녕부사를 거쳐 1777년(정조 1) 우의정, 다음해 좌의정, 그 다음해 영의정에 임명되었다.

1780년 일시 한직에 물러났다가 곧 좌의정영의정을 역임했다.

1783년 판중추부사가 되었고, 1791년 영중추부사로 죽었다.

그는 영조대 중반까지는 은인자중하여 크게 현달하지 못했으나, 영조 말년에는 세손의 대리청정을 위해 진력을 한 결과 정조에 의해 중용되었다.

처음 시호는 충헌(忠憲)이었으나 정조가 후에 충문(忠文)으로 바꾸었다.

[참고문헌]

英祖實錄
正祖實錄
國朝榜目

[집필자]

이문기(李文基)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2011-01-03문과방목과 大丘徐氏世譜(2003년 간행)를 참고하여 본관을 달성(達城)에서 대구(大丘)로 수정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