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래(尹錫來)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24C11DB798B1665X0 |
자(字) | 중길(仲吉) |
호(號) | 둔정(鈍靜) |
호(號) | 만회(晩晦) |
생년 | 1665(현종 6) |
졸년 | 1725(영조 1)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파평(坡平)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윤리(尹理) |
저서 | 『문견록(聞見錄)』 |
[관련정보]
[상세내용]
윤석래(尹錫來)
1665년(현종 6)∼1725년(영조 1).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중길(仲吉), 호는 둔정(鈍靜)‧만회(晩晦).
부윤 윤리(尹理)의 아들이다.
1690년(숙종 16) 사마시를 거쳐 1710년 증광문과에 갑과로 급제, 숭릉직장(崇陵直長)이 되었고, 1714년 지평을 거쳐 필선‧장령‧헌납‧집의 등을 역임하였다. 윤선거(尹宣擧)의 문집을 훼판한 병신처분(丙申處分)후 소론을 옹호하다가 1716년 파직되었다.
그뒤 1719년 동부승지‧사간‧우부승지를 지냈고, 이듬해 경종의 즉위로 소론이 득세하자 사직하였다가 다시 사간에 재임되엇다.
1722년(경종 2) 동래부사로 재임중에 신임사화로 노론이 실각하고 소론이 집권하게 되자 사직하고 물러났다.
1724년 영조가 즉위하면서 노론이 재집권하자 판결사‧참찬관이 되었다.
이때 귀양가있던 정호(鄭澔)의 서용을 청하여 이를 실현시켰고, 그뒤 도승지를 거쳐 병조참판에 이르렀다.
저서로는 『문견록(聞見錄)』이 있다.
부윤 윤리(尹理)의 아들이다.
1690년(숙종 16) 사마시를 거쳐 1710년 증광문과에 갑과로 급제, 숭릉직장(崇陵直長)이 되었고, 1714년 지평을 거쳐 필선‧장령‧헌납‧집의 등을 역임하였다. 윤선거(尹宣擧)의 문집을 훼판한 병신처분(丙申處分)후 소론을 옹호하다가 1716년 파직되었다.
그뒤 1719년 동부승지‧사간‧우부승지를 지냈고, 이듬해 경종의 즉위로 소론이 득세하자 사직하였다가 다시 사간에 재임되엇다.
1722년(경종 2) 동래부사로 재임중에 신임사화로 노론이 실각하고 소론이 집권하게 되자 사직하고 물러났다.
1724년 영조가 즉위하면서 노론이 재집권하자 판결사‧참찬관이 되었다.
이때 귀양가있던 정호(鄭澔)의 서용을 청하여 이를 실현시켰고, 그뒤 도승지를 거쳐 병조참판에 이르렀다.
저서로는 『문견록(聞見錄)』이 있다.
[참고문헌]
肅宗實錄
景宗實錄
英祖實錄
國朝榜目
鼓山集
景宗實錄
英祖實錄
國朝榜目
鼓山集
[집필자]
김양수(金良洙)
명 : "석래(錫來)"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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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