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하익(兪夏益)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20D558C775B1631X0 |
자(字) | 사겸(士謙) |
호(號) | 백인당(百忍堂) |
생년 | 1631(인조 9) |
졸년 | 1699(숙종 25)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기계(杞溪)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조부 | 유수증(兪守曾) |
[관련정보]
[상세내용]
유하익(兪夏益)
1631년(인조 9)∼1699년(숙종 25).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기계(杞溪). 자는 사겸(士謙), 호는 백인당(百忍堂). 필선 유수증(兪守曾)의 손자이다.
1651년(효종 2) 진사시에 합격하고, 이어 1660년(현종 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지평‧사서‧정언‧부교리‧헌납 등을 역임하였다.
1667년에 황해도암행어사로 나가서는 수령들에게 신상필벌하여 관리들의 기풍을 진작시키고, 그뒤 이조정랑‧동부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1680년(숙종 6) 경신대출척으로 남인이 숙청될 때 함께 파직되어 문외출송(門外黜送)당하였다.
1689년 기사환국으로 서인이 추방되자 풀려나와 도승지에 등용, 그뒤 이조참판‧공조판서 등을 역임하고, 대사헌으로 동지춘추관사를 겸하면서 사고(史庫)의 보존에 대하여 소를 올려 사고의 보존에 만전을 기하도록 하였다.
1690년 이후 한성부판윤‧예조판서‧대사헌‧좌참찬‧형조판서를 역임하고 다시 대사헌이 되었다.
1694년 갑술옥사로 남인이 정권에서 물러날 때 같이 삭출되었다가 2년 뒤에 풀려났다. 글씨를 잘 썼다.
1651년(효종 2) 진사시에 합격하고, 이어 1660년(현종 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지평‧사서‧정언‧부교리‧헌납 등을 역임하였다.
1667년에 황해도암행어사로 나가서는 수령들에게 신상필벌하여 관리들의 기풍을 진작시키고, 그뒤 이조정랑‧동부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1680년(숙종 6) 경신대출척으로 남인이 숙청될 때 함께 파직되어 문외출송(門外黜送)당하였다.
1689년 기사환국으로 서인이 추방되자 풀려나와 도승지에 등용, 그뒤 이조참판‧공조판서 등을 역임하고, 대사헌으로 동지춘추관사를 겸하면서 사고(史庫)의 보존에 대하여 소를 올려 사고의 보존에 만전을 기하도록 하였다.
1690년 이후 한성부판윤‧예조판서‧대사헌‧좌참찬‧형조판서를 역임하고 다시 대사헌이 되었다.
1694년 갑술옥사로 남인이 정권에서 물러날 때 같이 삭출되었다가 2년 뒤에 풀려났다. 글씨를 잘 썼다.
[참고문헌]
顯宗實錄
肅宗實錄
國朝榜目
國朝人物志
樊巖集
肅宗實錄
國朝榜目
國朝人物志
樊巖集
[집필자]
홍종필(洪鍾佖)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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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