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이제(尹以濟)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24C774C81CB1628X0 |
자(字) | 여즙(汝楫) |
생년 | 1628(인조 6) |
졸년 | 1701(숙종 27)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파평(坡平)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윤세징(尹世徵) |
[관련정보]
[상세내용]
윤이제(尹以濟)
1628년(인조 6)∼1701년(숙종 27).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여즙(汝楫). 윤세징(尹世徵)의 아들이다.
1663년(현종 4)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고, 1676년(숙종 2) 의주부윤이 되고 강화유수‧공청도관찰사 등을 거쳐, 1682년 진하 겸 진주사은부사(進賀兼陳奏謝恩副使)가 되어 청나라에 다녀왔다.
그뒤 승지‧동지중추부사‧경기도관찰사‧평안도관찰사 등을 거쳐 1689년 기사환국이 일어나자 남인으로 어영대장에 임명되었다.
그뒤 한성부 좌‧우윤을 거쳐 판윤이 되고 형조판서가 되었다.
1691년에는 원접사(遠接使)가 되어 청나라 사신을 맞아들이기도 하였다.
그뒤로 비변사제조‧우참찬‧공조판서‧형조판서‧어영대장 등 요직을 지내다가 1694년 갑술옥사가 일어나자 삭탈관작되어 향리 포천에서 은거하였다.
세번이나 도백을 지내고 다년간 병마권을 잡았으나 항상 청백하여 집에는 담장이 없었고, 스스로 몸가짐을 삼가하여 당화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큰 화를 입지 않았다.
1663년(현종 4)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고, 1676년(숙종 2) 의주부윤이 되고 강화유수‧공청도관찰사 등을 거쳐, 1682년 진하 겸 진주사은부사(進賀兼陳奏謝恩副使)가 되어 청나라에 다녀왔다.
그뒤 승지‧동지중추부사‧경기도관찰사‧평안도관찰사 등을 거쳐 1689년 기사환국이 일어나자 남인으로 어영대장에 임명되었다.
그뒤 한성부 좌‧우윤을 거쳐 판윤이 되고 형조판서가 되었다.
1691년에는 원접사(遠接使)가 되어 청나라 사신을 맞아들이기도 하였다.
그뒤로 비변사제조‧우참찬‧공조판서‧형조판서‧어영대장 등 요직을 지내다가 1694년 갑술옥사가 일어나자 삭탈관작되어 향리 포천에서 은거하였다.
세번이나 도백을 지내고 다년간 병마권을 잡았으나 항상 청백하여 집에는 담장이 없었고, 스스로 몸가짐을 삼가하여 당화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큰 화를 입지 않았다.
[참고문헌]
肅宗實錄
國朝榜目
國朝榜目
[집필자]
홍순만(洪淳晩)
명 : "이제(以濟)"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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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