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관(崔寬)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2CD5CAD00FFFFB1613X0 |
자(字) | 율보(栗甫) |
생년 | 1613(광해군 5) |
졸년 | 1695(숙종 21)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전주(全州) |
활동분야 | 기타 > 기타 |

부 | 최계창(崔繼昌) |
조부 | 최행(崔行) |
처부 | 이오(李澳) |
외조부 | 이정경(李禎慶) |

[상세내용]
최관(崔寬)
1613년(광해군 5)∼1695년(숙종 21). 자는 계홍(季弘), 율보(栗甫).
조부는 최행(崔行)이고, 부친은 최계창(崔繼昌)이다. 외조부는 이정경(李禎慶)이고, 처부는 호안군(湖安君) 이오(李澳)이다.
1651년(효종 2) 신묘(辛卯) 알성시(謁聖試) 병과(丙科) 2위로 문과에 급제하여, 1660년(현종 1)에 정언을 비롯하여 이후 장령, 사간, 온성부사(穩城府使), 동부승지, 황해도관찰사 등을 지냈다.
1674년(숙종 1)에 승지를 지내고, 1677년(숙종 3)에 강원도관찰사를 거쳐, 1680년(숙종 6)에 다시 승지가 되었다. 1681년(숙종 7)에 우의정 이상진(李尙眞)과 영의정 김수항(金壽恒)의 추천으로 경기도관찰사에 제수되고, 1682년(숙종 8)에는 대사간으로서 임금에게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을 돌보고 학문에 부지런하고 어진 사람을 임용(任用)할 것’을 상소하였다. 이후 1684년(숙종 10)에 개성유수(開城留守)를 지내고, 이듬해 도승지를 거쳐, 1686년(숙종 12)에 대사헌에 임용되어 오래도록 그 자리에 머물렀다. 1695년(숙종 21)에는 청백리에 피선(被選)되었다.
1695년(숙종 21)에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로서 사망하니, 나이 83세였다.
조부는 최행(崔行)이고, 부친은 최계창(崔繼昌)이다. 외조부는 이정경(李禎慶)이고, 처부는 호안군(湖安君) 이오(李澳)이다.
1651년(효종 2) 신묘(辛卯) 알성시(謁聖試) 병과(丙科) 2위로 문과에 급제하여, 1660년(현종 1)에 정언을 비롯하여 이후 장령, 사간, 온성부사(穩城府使), 동부승지, 황해도관찰사 등을 지냈다.
1674년(숙종 1)에 승지를 지내고, 1677년(숙종 3)에 강원도관찰사를 거쳐, 1680년(숙종 6)에 다시 승지가 되었다. 1681년(숙종 7)에 우의정 이상진(李尙眞)과 영의정 김수항(金壽恒)의 추천으로 경기도관찰사에 제수되고, 1682년(숙종 8)에는 대사간으로서 임금에게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을 돌보고 학문에 부지런하고 어진 사람을 임용(任用)할 것’을 상소하였다. 이후 1684년(숙종 10)에 개성유수(開城留守)를 지내고, 이듬해 도승지를 거쳐, 1686년(숙종 12)에 대사헌에 임용되어 오래도록 그 자리에 머물렀다. 1695년(숙종 21)에는 청백리에 피선(被選)되었다.
1695년(숙종 21)에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로서 사망하니, 나이 83세였다.
[참고문헌]
朝鮮王朝實錄
隋城崔氏世譜
隋城崔氏世譜
[집필자]
이채경
대표명 | 최관(崔寬) |
성명 | 최관(崔寬) |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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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31 | 2008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