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익전(申翊全)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2E0C775C804B1605X0 |
자(字) | 여만(汝萬) |
호(號) | 동강(東江) |
생년 | 1605(선조 38) |
졸년 | 1660(현종 1)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평산(平山)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신흠(申欽) |
모 | 전의이씨(全義李氏) |
외조부 | 이제신(李濟臣) |
저서 | 『동강유집』 |
[관련정보]
[상세내용]
신익전(申翊全)
1605년(선조 38)∼1660년(현종 1).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여만(汝萬), 호는 동강(東江).
부친은 영의정 신흠(申欽)이며, 모친은 전의이씨(全義李氏)로 절도사 이제신(李濟臣)의 딸이다. 김상헌(金尙憲)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628년(인조 6) 학행으로 천거되어 재랑(齋郞)이 되고, 이어 검열‧정언‧지평 등을 지냈다.
1636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그해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갔다가 돌아와 부응교‧사인(舍人)‧사간을 거쳐 광주목사(光州牧使)를 지냈다.
1639년에는 서장관으로 연경(燕京)에 다녀오기도 하였다. 효종 때 호조‧예조‧병조의 참판 등을 지내면서 동지춘추관사(同知春秋館事)로 『인조실록』 편찬에 참여하였고, 그뒤 한성부의 우윤과 좌윤을 거쳐 도승지에 이르렀다.
그의 관직생활은 소현세자(昭顯世子)의 죽음으로 미묘한 처지에 놓여 한때 위태로운 경우도 있었으나, 충신(忠信)을 생활신조로 삼아 큰 위난을 당함이 없이 자수(自守)할 수 있었다. 『주역』을 애독하여 깊이 연찬하였고, 문장에 능하였으며 글씨에도 뛰어났다.
저서로는 『동강유집』 19권 3책이 있다.
부친은 영의정 신흠(申欽)이며, 모친은 전의이씨(全義李氏)로 절도사 이제신(李濟臣)의 딸이다. 김상헌(金尙憲)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628년(인조 6) 학행으로 천거되어 재랑(齋郞)이 되고, 이어 검열‧정언‧지평 등을 지냈다.
1636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그해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갔다가 돌아와 부응교‧사인(舍人)‧사간을 거쳐 광주목사(光州牧使)를 지냈다.
1639년에는 서장관으로 연경(燕京)에 다녀오기도 하였다. 효종 때 호조‧예조‧병조의 참판 등을 지내면서 동지춘추관사(同知春秋館事)로 『인조실록』 편찬에 참여하였고, 그뒤 한성부의 우윤과 좌윤을 거쳐 도승지에 이르렀다.
그의 관직생활은 소현세자(昭顯世子)의 죽음으로 미묘한 처지에 놓여 한때 위태로운 경우도 있었으나, 충신(忠信)을 생활신조로 삼아 큰 위난을 당함이 없이 자수(自守)할 수 있었다. 『주역』을 애독하여 깊이 연찬하였고, 문장에 능하였으며 글씨에도 뛰어났다.
저서로는 『동강유집』 19권 3책이 있다.
[참고문헌]
孝宗實錄
顯宗實錄
國朝人物考
東江遺集
密陽誌
顯宗實錄
國朝人物考
東江遺集
密陽誌
[이미지]
[집필자]
이민식(李民植)
명 : "익전(翊全)"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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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