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찬(金光燦)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AE40AD11CC2CB1597X0 |
자(字) | 사회(思晦) |
생년 | 1597(선조 30) |
졸년 | 1668(현종 9)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안동(安東[新])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김상헌(金尙憲) |
생부 | 김상관(金尙寬) |
[상세내용]
김광찬(金光燦)
1597년(선조 30)∼1668년(현종 9).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新]). 자는 사회(思晦).
부친은 부사 김상관(金尙寬)이며, 작은아버지인 좌의정 김상헌(金尙憲)의 양자로 들어갔다.
광해군 때는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있다가 1627년(인조 5)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음서로 세마(洗馬)가 되었으며, 병자호란 때 아버지를 따라 남한산성으로 인조를 호종하였다.
통진‧교하의 현감 등 지방관을 역임하던중, 아들 김수흥(金壽興)‧김수항(金壽恒)이 출세하자 1661년(현종 2) 공조참의에 특제되었다. 뒤에 청풍군수‧파주목사를 거쳐 동지중추부사에 올랐다.
1637년 아버지 김상헌이 척화를 주장하며 자살을 기도했을 때 적극 만류하지 않아 물의를 빚기도 하였다.
부친은 부사 김상관(金尙寬)이며, 작은아버지인 좌의정 김상헌(金尙憲)의 양자로 들어갔다.
광해군 때는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있다가 1627년(인조 5)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음서로 세마(洗馬)가 되었으며, 병자호란 때 아버지를 따라 남한산성으로 인조를 호종하였다.
통진‧교하의 현감 등 지방관을 역임하던중, 아들 김수흥(金壽興)‧김수항(金壽恒)이 출세하자 1661년(현종 2) 공조참의에 특제되었다. 뒤에 청풍군수‧파주목사를 거쳐 동지중추부사에 올랐다.
1637년 아버지 김상헌이 척화를 주장하며 자살을 기도했을 때 적극 만류하지 않아 물의를 빚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顯宗實錄
國朝人物考
燃藜室記述
丙子錄
國朝人物考
燃藜室記述
丙子錄
[집필자]
이원근(李元根)
대표명 | 김광찬(金光燦) |
명 | 광찬(光燦) |
성명 | 김광찬(金光燦) |
자 | 사회(思晦) |
호 | 수운거사(水雲居士) |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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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