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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괄(李适)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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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백규(白圭)
생년1587(선조 20)
졸년1624(인조 2)
시대조선중기
본관고성(固城)
활동분야무신 > 무신
공신호정사공신(靖社功臣)

[상세내용]

이괄(李适)
1587년(선조 20)∼1624년(인조 2). 조선 중기의 무신‧반란자. 본관은 고성(固城). 자는 백규(白圭). 병조참판 이육(李陸)의 후손이다. 선조 때 무과에 급제한 뒤 형조좌랑태안군수를 역임하였다.

1622년(광해군 14) 함경북도병마절도사에 임명되어 임지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을 즈음 평소 친분이 있던 신경유(申景裕)의 권유로 광해군을 축출하고 새 왕을 추대하는 계획에 가담하게 되고 1623년 3월에 일어난 인조반정 때 큰 공을 세웠다.

그러나 반정 과정에서 주도세력인 거의대장(擧義大將) 김류(金瑬)의 우유부단한 처사에 크게 반발하여 불화하게 되어 반정 뒤에 겨우 한성부판윤의 벼슬을 받게 되어 불만이 많았다.

1623년(인조 1) 포도대장을 지낸 뒤 평안병사부원수에 임명되었다. 평안도 영변에 출진하여 군사훈련에 힘쓰는 한편 그 지방의 성책(城栅)을 보수하여 진의 방비를 엄히 하였는데, 이는 당시 후금과의 국제관계가 긴박하여 불의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이해 윤10월 반정에 참가한 공신들의 공훈을 책정할 때 정사공신(靖社功臣) 2등의 첫째가 되었다.

1624년 정월에 외아들 이전(李旃)한명련(韓明璉)정충신(鄭忠信)기자헌(奇自獻)현즙(玄楫)이시언(李時言) 등과 함께 반역을 꾀한다는 무고를 받았다. 이어 그의 군중(軍中)에 머물고 있던 아들 이전을 붙잡아 사실 여부를 조사한다는 명목으로 서울에서 선전관의금부도사 등이 영변에 내려오자 이들을 죽이고 반란을 일으켰다.

신속한 행군으로 한때 서울을 점령, 기세를 떨쳤으나 곧 관군에 대패, 피신중 부하 장수에게 살해되었다. 무과출신이었으나 문장과 서예에도 능하였다.

[참고문헌]

光海君日記
仁祖實錄
燃藜室記述
朝野輯要
亂中雜錄
黙齋日記
길마재에 꿈을 묻고―李适―(河炫綱, 韓國의 人間像 2, 新丘文化社, 1965)

[집필자]

하현강(河炫綱)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