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언(李時言)
[상세내용]
이시언(李時言)
1557년(명종 12)∼1624년(인조 2). 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전주(全州).
1589년(선조 22) 이산해(李山海)의 천거로 오위(五衛)의 사용(司勇)에 등용되었으며, 그뒤 사과에 오르고 1592년에는 상호군에 승진되었다.
임진왜란중 황해도좌방어사로 있다가 충청도병마절도사로 전임, 경주탈환전에서 큰 공을 세웠다. 경주탈환전 때에 정기룡(鄭起龍)‧권응수(權應洙) 등의 의병장과 합세하고 명나라의 원군과 연합하여 수훈,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승차되었다.
1594년 전라도병마절도사로 나아갔으며, 1601년에는 충청도 일원에서 일어난 이몽학(李夢鶴)의 난을 진압하는 데 기여하였고, 1605년 함경도순변사로 변방을 맡았다.
광해군 때에는 평안병사‧훈련대장이 되었고, 특히 광해군 때 북방의 대후금 변정(對後金邊政)에 크게 기여하였으며, 인조초에는 순변부원수(巡邊副元帥)가 되었으나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이 반란을 일으키자 내응(內應)을 염려하여 기자헌(奇自獻)을 비롯한 35명이 처형될 때 함께 사형되었다.
1589년(선조 22) 이산해(李山海)의 천거로 오위(五衛)의 사용(司勇)에 등용되었으며, 그뒤 사과에 오르고 1592년에는 상호군에 승진되었다.
임진왜란중 황해도좌방어사로 있다가 충청도병마절도사로 전임, 경주탈환전에서 큰 공을 세웠다. 경주탈환전 때에 정기룡(鄭起龍)‧권응수(權應洙) 등의 의병장과 합세하고 명나라의 원군과 연합하여 수훈,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승차되었다.
1594년 전라도병마절도사로 나아갔으며, 1601년에는 충청도 일원에서 일어난 이몽학(李夢鶴)의 난을 진압하는 데 기여하였고, 1605년 함경도순변사로 변방을 맡았다.
광해군 때에는 평안병사‧훈련대장이 되었고, 특히 광해군 때 북방의 대후금 변정(對後金邊政)에 크게 기여하였으며, 인조초에는 순변부원수(巡邊副元帥)가 되었으나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이 반란을 일으키자 내응(內應)을 염려하여 기자헌(奇自獻)을 비롯한 35명이 처형될 때 함께 사형되었다.
[참고문헌]
宣祖實錄
光海君日記
仁祖實錄
備邊司謄錄
燃藜室記述
光海君日記
仁祖實錄
備邊司謄錄
燃藜室記述
[집필자]
반윤홍(潘允洪)
명 : "시언(時言)"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
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