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치검색 표제어 전체
검색
정광성(鄭廣成)

[요약정보]

UCIG002+AKS-KHF_13C815AD11C131B1576X0
자(字)수백(壽伯)
호(號)제곡(濟谷)
생년1576(선조 9)
졸년1654(효종 5)
시대조선중기
본관동래(東萊)
활동분야문신 > 문신
정창연(鄭昌衍)

[상세내용]

정광성(鄭廣成)
1576년(선조 9)∼1654년(효종 5).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수백(壽伯), 호는 제곡(濟谷). 좌의정 정창연(鄭昌衍)의 아들이며, 참판 정광경(鄭廣敬)의 형이고, 영의정 정태화(鄭太和)의 아버지이다.

1601년(선조 34)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1603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검열대교 등을 거쳐, 1605년 이후 정자수찬교리지평 등 초년에 주로 삼사의 현직(顯職)을 역임하였다.

1618년(광해군 10) 대비삭호문제(大妃削號問題)와 아울러 재차 폐모론이 일어났을 때 부친 정창연의 정청불참문제(庭請不參問題)로 인하여 탄핵을 받았으나 계속 등용되어 형조참의우승지남양부사경기도관찰사 등을 지낸 다음, 병자호란 후 벼슬에 뜻을 버리고 향리에 물러가 있었다.

1649년 효종이 즉위하자 형조판서에 오른 뒤 부호군을 거쳐 지돈녕부사가 되어 죽었다.

[참고문헌]

宣祖實錄
光海君日記
仁祖實錄
國朝榜目
國朝人物考
燃藜室記述

[집필자]

조원래(趙湲來)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