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서흠(睦敍欽)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BAA9C11CD760B1572X0 |
자(字) | 순경(舜卿) |
호(號) | 매계(梅溪) |
시호(諡號) | 충정(忠貞) |
생년 | 1572(선조 5) |
졸년 | 1652(효종 3)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사천(泗川)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목첨(睦詹) |
외조부 | 정건(鄭謇) |
[상세내용]
목서흠(睦敍欽)
1572년(선조 5)∼1652년(효종 3).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사천(泗川). 자는 순경(舜卿), 호는 매계(梅溪).
부친은 이조참판 목첨(睦詹)이며, 모친은 증병조참판 정건(鄭謇)의 딸이다.
1597년 음보로 제용감참봉(濟用監參奉)에 임명되었으나 사퇴하고, 1603년 다시 내시교관(內侍敎官)을 거쳐, 1606년 양구현감(楊口縣監)에 재직하던 중 문묘낙서(文廟落書)사건의 책임을 지고 파직되었다.
1610년(광해군 2)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1618년 병조정랑 및 여러 청요직(淸要職)을 거쳐, 함경도선유어사(咸鏡道宣諭御史)‧광주목사(廣州牧使) 등을 역임하였다.
1625년(인조 3) 지제교(知製敎)에 이어 좌승지가 되고, 1627년 정묘호란 때 인조를 남한산성에 호종하였으며, 양양부사‧개성부유수‧참찬관(參贊官), 좌‧우승지, 예조참판을 거쳤다.
1650년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역임하고, 기로소의 당상관을 겸하고 수직(壽職)으로 자헌대부(資憲大夫)에 올랐다. 좌찬성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충정(忠貞)이다.
부친은 이조참판 목첨(睦詹)이며, 모친은 증병조참판 정건(鄭謇)의 딸이다.
1597년 음보로 제용감참봉(濟用監參奉)에 임명되었으나 사퇴하고, 1603년 다시 내시교관(內侍敎官)을 거쳐, 1606년 양구현감(楊口縣監)에 재직하던 중 문묘낙서(文廟落書)사건의 책임을 지고 파직되었다.
1610년(광해군 2)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1618년 병조정랑 및 여러 청요직(淸要職)을 거쳐, 함경도선유어사(咸鏡道宣諭御史)‧광주목사(廣州牧使) 등을 역임하였다.
1625년(인조 3) 지제교(知製敎)에 이어 좌승지가 되고, 1627년 정묘호란 때 인조를 남한산성에 호종하였으며, 양양부사‧개성부유수‧참찬관(參贊官), 좌‧우승지, 예조참판을 거쳤다.
1650년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역임하고, 기로소의 당상관을 겸하고 수직(壽職)으로 자헌대부(資憲大夫)에 올랐다. 좌찬성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충정(忠貞)이다.
[참고문헌]
光海君日記
仁祖實錄
孝宗實錄
國朝榜目
國朝人物考
仁祖實錄
孝宗實錄
國朝榜目
國朝人物考
[집필자]
이존희(李存熙)
명 : "서흠(敍欽)"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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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