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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원(鄭期遠)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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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사중(士重)
호(號)현산(見山)
시호(諡號)충의(忠毅)
생년1559(명종 14)
졸년1597(선조 30)
시대조선중기
본관동래(東萊)
활동분야문신 > 문신
정상신(鄭象信)
전주이씨(全州李氏)
외조부이경(李璟)
저서『현산집』
공신호선무공신(宣武功臣)

[상세내용]

정기원(鄭期遠)
1559년(명종 14)∼1597년(선조 30).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사중(士重), 호는 현산(見山).

부친은 별좌(別坐) 정상신(鄭象信)이며, 모친은 전주이씨(全州李氏)부정 이경(李璟)의 딸이다.

1585년(선조 18)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주서가 되었다. 이후 사헌부감찰에 제수되었다가 호조형조공조좌랑 등을 역임하였고, 1589년 사간원정언에 임명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 때에는 사은사(謝恩使)서장관으로 명나라에 갔다가 1594년 의주 행재소(行在所)에 복명한 뒤 병조좌랑에 제수되어 춘추관기사관을 겸하였다가 곧 정랑에 임명되었다.

이해 가을에 안악현감에 제수되고, 이듬해 병조정랑을 거쳐 사헌부장령 겸 지제교가 되었다. 이후 사간원헌납홍문관수찬시강원문학사간원사간종부시정승정원동부승지우부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1596년 고급주문사(告急奏聞使)로 다시 명나라에 가서 심유경(沈惟敬)이 강화회담을 그르치고 왜군이 다시 침입하여올 움직임이 있음을 알렸다.

이듬해 정유재란 때 예조참판으로 명나라 부총병 양원(楊元)접반사(接伴使)가 되어 남원에 갔다.

양원은 왜적이 성 가까이 근접하자 승전이 어렵다고 판단하여 먼저 피신할 것을 권유하였으나 이를 거절하고, 서숙(庶叔) 기생(己生)에게 “도적이 이미 남원 십리 밖을 침범하였으니 머지않아 포위될 것”이라는 내용과 함께 “소자는 이미 나라에 몸을 바쳤으니 염려하지 마십시오.”라는 비장한 편지를 아버지에게 올린 뒤, 왜군과 항쟁하다가 제장(諸將)과 함께 전사하였다.

양원이 조정에 돌아가 당시의 상황을 전하자 선조예조판서를 증직하였고, 뒤에 다시 숭정대부 의정부좌찬성 세자이사 지경연춘추관사(崇政大夫議政府左贊成世子貳師知經筵春秋館事)를 더하였다.

1604년 선무공신(宣武功臣) 3등에 녹훈되었고, 내성군(萊城君)으로 추봉되었다.

문장이 뛰어났고 글씨에도 능하였다. 남원 충렬사(忠烈祠)에 봉향되었다.

저서로는 『동국문헌비고』 예문고에 『현산집』이 있었다고는 하나 전하지 않고, 『현산실기』에 수록된 약간의 시문이 전한다. 시호는 충의(忠毅)이다.

[참고문헌]

宣祖實錄
國朝榜目
亂中雜錄
再造藩邦志
東閣雜記
紫海筆談
樊巖集
見山實記

[집필자]

이장희(李章熙)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2010-06-26호 견산(見山)의 발음을 현산(見山)으로 함. 관련 문집의 명칭도 견을 현으로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