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경리(高敬履)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ACE0ACBDB9ACB1560X0 |
자(字) | 이척(而惕) |
호(號) | 창랑(滄浪) |
생년 | 1559(명종 14) |
졸년 | 1609(광해군 1)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장흥(長興) |
활동분야 | 학생 > 유생 |
부 | 고계영(高季英) |
외조부 | 양응기(梁應箕) |
[상세내용]
고경리(高敬履)
1559년(명종 14)∼1609년(광해군 1). 조선 중기의 유생. 본관은 장흥(長興). 자는 이척(而惕), 호는 창랑(滄浪).
부친은 진사 고계영(高季英)이고, 모친은 양응기(梁應箕)의 딸이다.
김장생(金長生)의 문인으로 1591년(선조 24)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광해군 즉위 후 집권한 대북세력이 서인학통을 공격하자 최영경(崔永慶)을 죽이고, 임진왜란 당시 선조를 호종하지 않았다는 죄목으로 곤경에 빠져 있던 정철(鄭澈)과 성혼(成渾)을 두둔하는 상소를 주도하였다.
그러나 이 상소에서 선현으로 이름 높은 이언적(李彦迪)을 제외하였다는 이유로 대북세력에 의하여 상소는 불태워지고, 사림의 구호에도 불구하고 종신금고에 처해졌다.
1676년 광주(光州)에 건립된 운암사(雲巖祠)에 제향되었으며, 지평에 추증되었다.
부친은 진사 고계영(高季英)이고, 모친은 양응기(梁應箕)의 딸이다.
김장생(金長生)의 문인으로 1591년(선조 24)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광해군 즉위 후 집권한 대북세력이 서인학통을 공격하자 최영경(崔永慶)을 죽이고, 임진왜란 당시 선조를 호종하지 않았다는 죄목으로 곤경에 빠져 있던 정철(鄭澈)과 성혼(成渾)을 두둔하는 상소를 주도하였다.
그러나 이 상소에서 선현으로 이름 높은 이언적(李彦迪)을 제외하였다는 이유로 대북세력에 의하여 상소는 불태워지고, 사림의 구호에도 불구하고 종신금고에 처해졌다.
1676년 광주(光州)에 건립된 운암사(雲巖祠)에 제향되었으며, 지평에 추증되었다.
[참고문헌]
光海君日記
大東野乘
梅山集
淸選考
大東野乘
梅山集
淸選考
[집필자]
주웅영(朱雄英)
명 : "경리(敬履)"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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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