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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여순(洪汝諄)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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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사신(士信)
생년1547(명종 2)
졸년1609(광해군 1)
시대조선중기
본관남양(南陽[唐])
활동분야문신 > 문신
홍은(洪誾)

[상세내용]

홍여순(洪汝諄)
1547년(명종 2)∼1609년(광해군 1).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남양(南陽[唐]). 자는 사신(士信). 홍은(洪誾)의 아들이다.

1567년(명종 22) 생원시에 합격하고, 1568년(선조 1)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 이듬해 황해도도사가 되고, 1575년 성절사(聖節使)질정관(質正官)이 되어 명나라 연경(燕京)에 다녀왔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병조판서로서 선조를 호종, 북으로 피란 도중에 호조판서로 전임되었다. 평양에 이르러 난민들의 폭동으로 절골상(折骨傷)을 당하기도 하였다. 지중추부사북도순찰사(北道巡察使)를 겸하였으나, 성품이 간악하다는 대간의 탄핵을 받아 순천부에 유배되었다.

난이 끝난 뒤 남이공(南以恭)김신국(金藎國) 등과 함께 유성룡(柳成龍) 등을 몰아내고 정권을 잡았으나, 1599년 그의 대사헌 임명을 남이공이 반대하자 북인에서 다시 분당하여 대북이라 부르고, 이이첨(李爾瞻) 등과 함께 남이공 등의 소북과 당쟁을 벌이다가 1600년 병조판서에서 삭탈관직되었다.

그러나 이듬해 곧 복관되었으나, 1608년 광해군이 즉위하자 또다시 탄핵을 받아 진도에 유배되어 배소에서 죽었다.

유영경(柳永慶)정인홍(鄭仁弘) 등과 더불어 조정의 현신(賢臣)들을 공박하다가, 이원익(李元翼)에게 이 사람을 쓰다가는 국가에 큰 화가 미치겠다는 평을 받은 바 있다.

[참고문헌]

宣祖實錄
光海君日記
國朝榜目
國朝人物考

[집필자]

권오호(權五虎)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