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직(盧稷)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2B178C9C1FFFFB1545X0 |
자(字) | 사형(士馨) |
생년 | 1545(인종 1) |
졸년 | 1618(광해군 10)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교하(交河)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노홍우(盧弘祐) |
외조부 | 김희수(金希壽) |
[관련정보]
[상세내용]
노직(盧稷)
1545년(인종 1)∼1618년(광해군 10).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교하(交河). 자는 사형(士馨).
부친은 현감 노홍우(盧弘祐)이며, 모친은 대사헌 김희수(金希壽)의 딸이다.
1570년(선조 3) 생원이 되고 1584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검열이 되었다. 글씨를 잘 써 주서로 옮겼으며, 그뒤 감찰‧좌랑‧지평을 거쳐 병으로 체직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 왕을 호종할 때 말에서 떨어져 다쳤으나 계속 성천의 행재소(行在所)까지 달려가 병조참판에 임명되었고 이어 개성유수가 되었다.
정유재란 때는 경강주사대장(京江舟師大將)을 지내고, 접반정사(接伴正使) 김명원(金命元)밑의 부사로서 명나라 지휘관 형개(邢玠)를 맞아 군사문제를 논의하였다.
그뒤 부제학‧황해감사‧병조판서‧경기감사를 거쳤다. 임해군옥사(臨海君獄事)때 파직되었으나 판중추부사를 역임하였다. 감사로 있을 때 민폐를 덜어 칭송을 받았다. 서화 등 다방면에 조예가 깊었는데, 예서(隷書)와 전서(篆書)에 뛰어났다.
부친은 현감 노홍우(盧弘祐)이며, 모친은 대사헌 김희수(金希壽)의 딸이다.
1570년(선조 3) 생원이 되고 1584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검열이 되었다. 글씨를 잘 써 주서로 옮겼으며, 그뒤 감찰‧좌랑‧지평을 거쳐 병으로 체직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 왕을 호종할 때 말에서 떨어져 다쳤으나 계속 성천의 행재소(行在所)까지 달려가 병조참판에 임명되었고 이어 개성유수가 되었다.
정유재란 때는 경강주사대장(京江舟師大將)을 지내고, 접반정사(接伴正使) 김명원(金命元)밑의 부사로서 명나라 지휘관 형개(邢玠)를 맞아 군사문제를 논의하였다.
그뒤 부제학‧황해감사‧병조판서‧경기감사를 거쳤다. 임해군옥사(臨海君獄事)때 파직되었으나 판중추부사를 역임하였다. 감사로 있을 때 민폐를 덜어 칭송을 받았다. 서화 등 다방면에 조예가 깊었는데, 예서(隷書)와 전서(篆書)에 뛰어났다.
[참고문헌]
宣祖實錄
光海君日記
國朝榜目
淸選考
愚伏集
光海君日記
國朝榜目
淸選考
愚伏集
[집필자]
이정일(李貞一)
성명 : "노직(盧稷)"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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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