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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부(尹釜)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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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자기(子器)
생년1510(중종 5)
졸년1560(명종 15)
시대조선전기
본관파평(坡平)
활동분야문신 > 문신
윤승홍(尹承弘)
조부윤간(尹侃)
증조부윤필상(尹弼商)

[상세내용]

윤부(尹釜)
1510년(중종 5)∼1560년(명종 15).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자기(子器).

부는 윤승홍(尹承弘), 조부는 윤간(尹侃), 증조부는 윤필상(尹弼商)이다.

1531년(중종 26)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고, 1537년(중종 32) 문과별시(文科別試) 병과(丙科)에 급제하였다. 1539년(중종 34)에 주서(注書)를 지내고, 1544년(중종 39)에 사은사(謝恩使) 심광언(沈光彦)서장관(書狀官)으로 부경(赴京)하였다.

1547 년(명종 2)에 사헌부장령을 지내고, 이듬해 홍문관부교리에 제수되었다. 1550년(명종 5)에 의정부사인을 지냈으며, 같은 해 9월에 통훈대부(通訓大夫) 행의정부사인(行議政府舍人)으로 『중종실록(中宗實錄)』 편수관이 되었다.

1551년(명종 6) 11월에는 청간(淸簡)한 사람으로 초계(抄啓) 되었으며, 1553년(명종 8)에 우부승지를 거쳐, 1556년(명종 11)에는 성절사(聖節使)가 되어 북경에 다녀왔다. 당시 조선의 사신이 중국에 가면 융숭한 대접을 받고 자유롭게 출입하였다. 그런데 나라의 기강이 해이해지고 탐욕스런 풍조가 심해진 뒤부터 북경에 가는 사행(使行)이 금지품을 많이 가져가서 장사치처럼 물자를 교역하였다. 그래서 사신의 체면을 손상시키고 중국인들에게 멸시를 받기에 이르렀다. 이 때문에 경연에서 무역(貿易)을 못하게 하자는 의논이 있었으나, 도리어 권신(權臣)들이 저지하곤 했다.

1558년(명종 13)에 강원도관찰사, 1560년(명종 15)에 동지중추부사로 재임하다가 사망하였다. 그는 소탈하여 자신을 구속하거나 검속함이 없었고, 지위가 2품에 올랐는데도 항상 도로를 보행(步行)하는 등 겉치레에 마음을 쓰지 않았다고 전한다.

[참고문헌]

國朝文科榜目 司馬榜目 朝鮮王朝實錄

[집필자]

이채경
수정일수정내역
2008-12-312008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