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안성(朴安性)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BC15C548C131D1512X0 |
생년 | ?(미상) |
졸년 | 1512(중종 7) |
시대 | 조선전기 |
본관 | 죽산(竹山)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박원형(朴元亨) |
[상세내용]
박안성(朴安性)
생년 미상~1512년(중종 7).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죽산(竹山).
영의정 박원형(朴元亨)의 아들이다.
1459년(세조 5) 문과에 정과로 합격한 뒤 1473년(성종 4)에는 부정(副正)이 되었고, 1474년에는 경차관(敬差官)으로 충청우도와 전라도에 내려가 구휼을 하였다.
1475년에는 봉상시정(奉常寺正)으로 선무사(宣撫使)가 되어 대마도에 다녀왔고, 1479년에는 대사간을 거쳐 충청도관찰사‧형조참의‧이조참의‧황해도관찰사‧호조판서‧전라도관찰사‧한성부좌윤 등을 두루 역임하였다.
1496년(연산군 2)에 예조판서 이후 평안도관찰사‧공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1504년 갑자사화 때 장형(杖刑)을 받고 진잠(鎭岑)에 유배되었다가 연산군 폐위로 방면되었다.
1506년(중종 1)에 좌찬성이 되었고, 그뒤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가 되었다.
영의정 박원형(朴元亨)의 아들이다.
1459년(세조 5) 문과에 정과로 합격한 뒤 1473년(성종 4)에는 부정(副正)이 되었고, 1474년에는 경차관(敬差官)으로 충청우도와 전라도에 내려가 구휼을 하였다.
1475년에는 봉상시정(奉常寺正)으로 선무사(宣撫使)가 되어 대마도에 다녀왔고, 1479년에는 대사간을 거쳐 충청도관찰사‧형조참의‧이조참의‧황해도관찰사‧호조판서‧전라도관찰사‧한성부좌윤 등을 두루 역임하였다.
1496년(연산군 2)에 예조판서 이후 평안도관찰사‧공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1504년 갑자사화 때 장형(杖刑)을 받고 진잠(鎭岑)에 유배되었다가 연산군 폐위로 방면되었다.
1506년(중종 1)에 좌찬성이 되었고, 그뒤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가 되었다.
[참고문헌]
世祖實錄
成宗實錄
燕山君日記
中宗實錄
國朝榜目
成宗實錄
燕山君日記
中宗實錄
國朝榜目
[집필자]
원영환(元永煥)
명 : "안성(安性)"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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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