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담(權湛)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2AD8CB2F4FFFFD1423X0 |
호(號) | 괴정(槐亭) |
생년 | ?(미상) |
졸년 | 1423(세종 5) |
시대 | 조선전기 |
본관 | 안동(安東)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조부 | 권염(權廉) |
저서 | 『괴정집』 |
[상세내용]
권담(權湛)
미상∼1423년(세종 5). 고려말과 조선초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호는 괴정(槐亭).
조부는 찬성사를 지낸 권염(權廉)이다.
1374년(공민왕 24) 공민왕 시역사건에 관계한 권진(權瑨)의 일족이라 하여 한때 원주에 유배되었다.
그뒤 1389년(공양왕 1) 사헌장령이 되어 우왕을 옹립한 변안열(邊安烈)의 죄를 논할 때 이에 가담한 이경도(李庚道)를 국문하였다.
이듬해 남원부사가 되고 곧 간관(諫官)이 되었으나, 이초(彛初)의 옥(獄)에 연루되어 간관 진의귀(陳義貴)‧정습인(鄭習仁)‧맹사성(孟思誠) 등과 함께 멀리 유배되었다.
그러나 곧 사면되고 조선이 건국된 뒤에는 다시 중용되어, 1402년(태종 2) 우사간을 거쳐 1412년 공주목사, 1419년(세종 1) 황해도관찰사, 1423년 전주부윤 등 외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괴정집』이 있다.
조부는 찬성사를 지낸 권염(權廉)이다.
1374년(공민왕 24) 공민왕 시역사건에 관계한 권진(權瑨)의 일족이라 하여 한때 원주에 유배되었다.
그뒤 1389년(공양왕 1) 사헌장령이 되어 우왕을 옹립한 변안열(邊安烈)의 죄를 논할 때 이에 가담한 이경도(李庚道)를 국문하였다.
이듬해 남원부사가 되고 곧 간관(諫官)이 되었으나, 이초(彛初)의 옥(獄)에 연루되어 간관 진의귀(陳義貴)‧정습인(鄭習仁)‧맹사성(孟思誠) 등과 함께 멀리 유배되었다.
그러나 곧 사면되고 조선이 건국된 뒤에는 다시 중용되어, 1402년(태종 2) 우사간을 거쳐 1412년 공주목사, 1419년(세종 1) 황해도관찰사, 1423년 전주부윤 등 외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괴정집』이 있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太宗實錄
世宗實錄
高麗史節要
太宗實錄
世宗實錄
[집필자]
박한남(朴漢男)
수정일 | 수정내역 |
---|---|
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