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경(安方慶)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548BC29ACBDB1513X0 |
자(字) | 선응(善應) |
호(號) | 구배헌(灸背軒) |
생년 | 1513(중종 8) |
졸년 | 1569(선조 2) |
시대 | 조선전기 |
본관 | 죽산(竹山[舊])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안순(安恂) |
외조부 | 유진(兪鎭) |
[관련정보]
[상세내용]
안방경(安方慶)
1513년(중종 8)∼1569년(선조 2).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죽산(竹山). 자는 선응(善應), 호는 구배헌(灸背軒). 안순(安恂)의 아들이며, 모친은 홍문관부제학 유진(兪鎭)의 딸이다.
1540년(중종 35) 생원이 되고, 같은해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권지부정자(承文院權知副正字), 예문관검열‧대교‧봉교 등을 거쳐, 1545년(명종 즉위) 이후 사헌부감찰‧예조좌랑‧함경도도사‧영서도찰방(迎署道察訪)‧형조정랑‧장악원첨정 등을 역임하였다.
1550년 성균관사예로 『인종실록』을 찬수하였고, 지평‧경기도도사‧남원부사를 거쳐 1557년 사간원사간을 지냈다.
1561년 이후 병으로 벼슬을 떠나 있다가 1564년 홍문관교리‧동부승지를 거쳐 1565년 형조참의에 이르렀다. 이해에 문정왕후(文定王后)와의 불화로 외직에 나가 청홍도관찰사를 지냈고, 1568년 장례원판결사‧영흥부사를 역임하였다. 관직에서 물러나서는 용인에 기거하면서 거처를 남록구배헌(南麓灸背軒)이라 하였다.
1540년(중종 35) 생원이 되고, 같은해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권지부정자(承文院權知副正字), 예문관검열‧대교‧봉교 등을 거쳐, 1545년(명종 즉위) 이후 사헌부감찰‧예조좌랑‧함경도도사‧영서도찰방(迎署道察訪)‧형조정랑‧장악원첨정 등을 역임하였다.
1550년 성균관사예로 『인종실록』을 찬수하였고, 지평‧경기도도사‧남원부사를 거쳐 1557년 사간원사간을 지냈다.
1561년 이후 병으로 벼슬을 떠나 있다가 1564년 홍문관교리‧동부승지를 거쳐 1565년 형조참의에 이르렀다. 이해에 문정왕후(文定王后)와의 불화로 외직에 나가 청홍도관찰사를 지냈고, 1568년 장례원판결사‧영흥부사를 역임하였다. 관직에서 물러나서는 용인에 기거하면서 거처를 남록구배헌(南麓灸背軒)이라 하였다.
[참고문헌]
中宗實錄
宣祖實錄
國朝人物考
宣祖實錄
國朝人物考
[집필자]
이태진(李泰鎭)
수정일 | 수정내역 |
---|---|
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