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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광언(沈光彦)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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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언지(彦之)
호(號)둔암(鈍菴)
시호(諡號)호안(胡安)
생년1490(성종 21)
졸년1568(선조 1)
시대조선전기
본관청송(靑松)
활동분야문신 > 문신
심빈(沈濱)
조부심선(沈璿)

[상세내용]

심광언(沈光彦)
1490년(성종 21)∼1568년(선조 1).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언지(彦之), 호는 둔암(鈍菴).

조부는 관찰사 심선(沈璿)이며, 부친은 안성군수 심빈(沈濱)이다.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불우하게 지냈으나 학업에 열중하여 경전을 능히 통달하였고, 서책을 두루 읽어 우리나라 및 중국의 법률에 정통하였다.

1519년(중종 14) 생원시와 진사시에 연이어 합격하고, 1525년 식년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성균관전적에 특별히 제수되고, 그뒤 사간원정언홍문관부수찬사헌부장령 등의 청요직을 역임하였다.

1537년 파주목사로 선정을 베풀어 감사의 추천으로 이듬해 사복시정에 승진되었다.

그러나 그를 시기하는 사람들의 탄핵으로 다시 외직으로 밀려나 부평부사에 부임, 민폐를 제거하고 진휼에 힘썼다.

그뒤 대사간에 발탁되어 시무책을 제시하였고, 1543년 예조참판이 되었으며 이어서 사은사명나라에 다녀왔다. 인종이 즉위하자 전라도관찰사에 제수되어 지방수령의 탐학을 감독하고 민간에 효행과 절의를 장려하는 데 힘썼다.

1547년(명종 2) 이조참의, 1550년 이조참판, 1553년 한성부판윤에 올랐고, 이어서 형조판서공조판서한성부판윤을 역임하고, 1558년 지중추부사의 한직으로 물러났다.

그러나 곧 형조판서에 발탁되었고, 1561년 우참찬이 되어서는 과거제 운영의 정상화를 위하여 노력하였다.

성품이 검소하고 엄격하여 직무에 임하여서는 매우 공정하였다. 권세와 재물을 즐기지 않았고, 직언을 잘하였다.

특히, 법률에 밝아 형정을 오랫동안 주관하며 송사를 바르게 처리하였다. 시호는 호안(胡安)이다.

[참고문헌]

中宗實錄
仁宗實錄
明宗實錄
國朝榜目
國朝人物考

[집필자]

최완기(崔完基)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