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李薇)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2C774BBF8FFFFB1484X0 |
이명(異名) | 이봉(李芃) |
자(字) | 자패(子佩) |
호(號) | 산북(山北) |
생년 | 1484(성종 15)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전기 |
본관 | 덕수(德水)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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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 | 이의무(李宜茂)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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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정보]
[상세내용]
이미(李薇)
1484년(성종 15)∼미상.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덕수(德水). 초명은 봉(芃). 자는 자패(子佩), 호는 산북(山北). 증조부는 이명신(李明晨), 조부는 이추(李抽), 아버지는 사간 이의무(李宜茂), 외조부는 성희(成熺)이고, 처부는 조수만(趙壽萬)이다. 좌의정 이행(李荇)의 동생이다.
1515년(중종 10)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고, 정언‧감찰‧수찬‧교리 등을 역임하였다.
1528년(중종 23) 좌승지‧평안도관찰사‧도승지(都承旨)‧한성부우윤(漢城府右尹)을 지냈고, 이듬해에 진위사(陳慰使)가 되어 명에 다녀온 후 동지돈녕부사(同知敦寧府事)‧강원관찰사(江原觀察使)가 되었다. 이듬해에 전라도관찰사(全羅道觀察使)를 지냈고 1531년(중종 26)에 다시 한성부우윤을 지냈다.
1546년(명종 1) 대사헌에 이어 한성부우윤을 지냈고, 그뒤 동지의금부사‧동지중추부사를 거쳐, 1548년 예조판서가 되었으며, 이듬해 우찬성에 임명되었다. 이어서 형조판서‧한성부판윤을 거치는 동안 병이 많아 송사를 늦게 처리한다는 탄핵을 받기도 하였지만 계속해서 지중추부사‧동지중추부사 등을 지냈다.
1515년(중종 10)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고, 정언‧감찰‧수찬‧교리 등을 역임하였다.
1528년(중종 23) 좌승지‧평안도관찰사‧도승지(都承旨)‧한성부우윤(漢城府右尹)을 지냈고, 이듬해에 진위사(陳慰使)가 되어 명에 다녀온 후 동지돈녕부사(同知敦寧府事)‧강원관찰사(江原觀察使)가 되었다. 이듬해에 전라도관찰사(全羅道觀察使)를 지냈고 1531년(중종 26)에 다시 한성부우윤을 지냈다.
1546년(명종 1) 대사헌에 이어 한성부우윤을 지냈고, 그뒤 동지의금부사‧동지중추부사를 거쳐, 1548년 예조판서가 되었으며, 이듬해 우찬성에 임명되었다. 이어서 형조판서‧한성부판윤을 거치는 동안 병이 많아 송사를 늦게 처리한다는 탄핵을 받기도 하였지만 계속해서 지중추부사‧동지중추부사 등을 지냈다.
[참고문헌]
明宗實錄
國朝榜目
燃藜室記述
淸選考
大東野乘
國朝榜目
燃藜室記述
淸選考
大東野乘
[집필자]
원영환(元永煥)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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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