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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겸광(金謙光)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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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위경(撝卿)
시호(諡號)공안(恭安)
생년1419(세종 1)
졸년1490(성종 21)
시대조선전기
본관광산(光山)
활동분야문신 > 문신
김철산(金鐵山)
외조부김명리(金明理)
공신호좌리공신(佐理功臣)

[상세내용]

김겸광(金謙光)
1419년(세종 1)∼1490년(성종 21).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위경(撝卿).

부친은 증영의정 김철산(金鐵山)이며, 모친은 대도호부사 김명리(金明理)의 딸이다.

1453년(단종 1) 식년문과에 정과로 급제, 예문관검열이 되고, 그뒤 감찰정언병조좌랑병조정랑을 거쳐 1460년(세조 6) 장령에 승진되었다.

같은해 신숙주(申叔舟)종사관이 되어 건주위(建州衛)의 야인을 정벌하는 데 공을 세우고 군기시정에 올랐으며, 이듬해 지병조사(知兵曹事)에 이어 동부승지좌부승지우승지평안도관찰사 등을 역임했다.

1465년 호조참판을 거쳐 이듬해 개성부유수로 있을 때, 궐원이 된 평안도절도사의 적임자로 천거를 받아 승진, 임명되었다.

1467년 예조판서에 승직되었고, 이듬해 경상도관찰사로 나갔으며, 1469년(예종 1)에 예조판서에 재임되었다.

1471년에 좌리공신(佐理功臣) 3등으로 광성군(光成君)에 봉해지고, 1475년 정조사(正朝使)명나라에 다녀왔다.

1482년 황해도 지방의 기근을 구제하기 위하여 황해도진휼사가 되었고, 이듬해 우참찬이 되어 세조비인 정희왕후(貞熹王后)의 상례를 주관하였으며, 창경궁과 세자궁 중수의 책임을 맡아 처리하였다.

1484년 좌참찬을 거쳐 1486년 세자좌빈객이 되었다. 세조의 신임을 받아 건주위야인 토벌을 비롯하여 평안도관찰사절도사를 지내면서 세조의 국방정책에 기여한 바 컸다.

시호는 공안(恭安)이다.

[참고문헌]

世祖實錄
成宗實錄
國朝人物考
國朝榜目

[집필자]

이근수(李根洙)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