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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제(李先齊)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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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가보(家父)
호(號)필문(蓽門)
생년1390(공양왕 2)
졸년1453(단종 1)
시대조선전기
본관광산(光山)
활동분야문신 > 문신
이일영(李日英)
조부이홍길(李弘吉)

[상세내용]

이선제(李先齊)
1390년(공양왕 2)∼1453년(단종 1).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가보(家父)이고, 호는 필문(蓽門). 밀직제학 이홍길(李弘吉)의 손자이며, 이일영(李日英)의 아들이다.

1419년(세종 1) 진사로 식년문과에 급제하였으며, 벼슬이 예문관제학에 이르렀다.

1423년 『고려사』를 개수할 때 사관(史官)으로서, 앞서 정도전(鄭道傳) 등이 편찬한 『고려사』가 당시 이색(李穡)이인복(李仁復)이 지은 『금경록(金鏡錄)』에 의거함으로써 사실(史實)과 다른 점이 많다고 지적, 그 실상을 직서(直敍)하도록 하였다.

1431년에 집현전부교리춘추관기사관이 되어 『태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그뒤 형조참의첨지중추원사병조참의를 거쳐 1444년에 강원도관찰사로 나갔다.

1446년 예조참의를 거쳐 한때 삼의사제조(三醫司提調)를 지냈다.

이듬해 호조참판에 오르고, 1448년 하정사(賀正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이듬해 『고려사』 개찬을 감장(監掌)하고, 문종이 즉위하자 예문관제학이 되었다.

이때 ① 서북지방의 군제(軍制)정비, ② 야인의 객관(客館)을 별치(別置)할 것, ③ 어염세(魚鹽稅)를 확보하여 국가재정을 충실히 할 것 등을 건의하였다. 단종이 즉위한 뒤 경창부윤(慶昌府尹)이 되어서는 전염병 방제에 노력하였다.

[참고문헌]

世宗實錄
文宗實錄
端宗實錄
燃藜室記述
國朝榜目
大東韻府群玉

[집필자]

권인혁(權仁赫)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