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치검색 표제어 전체
검색
정사도(鄭思道)

[요약정보]

UCIG002+AKS-KHF_13C815C0ACB3C4B1318X0
이명(異名)정사도(鄭思度)
시호(諡號)문정(文貞)
생년1318(충숙왕 5)
졸년1379(우왕 5)
시대고려후기
본관영일(迎日)
활동분야문신 > 문신

[상세내용]

정사도(鄭思道)
1318년(충숙왕 5)∼1379년(우왕 5). 고려 공민왕 때의 문신. 본관은 영일(迎日)(주1)
본관
본인의 고려문과를 참고하여 본관을 영일(迎日)로 추가함.
.

1344년(충목왕 즉위) 좌헌납으로 서연관(書筵官)에 임명되었다.

1347년 우대언으로 김영돈(金永旽)이군해(李君侅) 등과 함께 정방제조(政房提調)가 되어 오랫동안 인사권을 관장하였다.

이해 국자감시(國子監試)를 주관하여 시(詩)‧부(賦)로써 박형(朴形) 등 52명을 선발하였다.

그뒤 내시 고용보(高龍普)의 공정하지 못한 인사관리를 탄핵하였다가 광양으로 유배당하였다.

1361년(공민왕 10) 홍건적이 침입하였을 때 전직 밀직제학으로서 김규(金虯)와 함께 절령책(岊嶺栅)을 지키는 임무를 부여받았으나 적의 공격을 받아 후퇴하였다.

1365년에는 경상도순문사에 임명되어 합포(合浦: 마산)에 있었는데, 마침 최영(崔瑩)신돈(辛旽)의 참소를 입고 동서강도지휘사(東西江都指揮使)에서 계림윤(鷄林尹)으로 전보되어 경주에 오게 되자, 왕의 조처에 불만을 가진 신돈이 다시 일을 꾸며 보고하고 그의 당류(黨類) 이득림(李得霖)경주에 보내어 최영을 사죄(死罪)로 엮어 죽이려고 하자, 이에 죽음을 무릅쓰고 반대하다가 파면되었다.

그뒤 1368년에는 왕이 왕륜사(王輪寺)에 있는 노국대장공주(魯國大長公主)의 영전(影殿)이 협소하다고 하여 마암(馬巖)으로 옮겨 짓게 하자 첨서밀직(簽書密直)으로서 첨의시중(僉議侍中) 유탁(柳濯), 동지밀직(同知密直) 안극인(安克仁)과 함께 백성을 괴롭히고 재물을 낭비한다는 이유로 영전의 역사를 중지할 것을 건의하다가 왕의 비위을 건드려 감옥에 일시 갇혔다가 곧 석방되었다.

1371년에는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로 승진되어 명나라하정사(賀正使)로 갔다왔으며, 1375년(우왕 1)에는 당시의 권신 이인임(李仁任)을 죽이려 하였다고 의심받아 정몽주(鄭夢周)김구용(金九容)이숭인(李崇仁)‧임효선(林孝先)‧염정수(廉廷秀)염흥방(廉興邦)박형(朴形)이성림(李成林)윤호(尹虎)최을의(崔乙義)조문신(趙文信) 등과 함께 유배되었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집필자]

강진철(姜晉哲)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