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을의(崔乙義)
[상세내용]
최을의(崔乙義)
미상∼1392년(태조 1). 고려의 문신.
1372년(공민왕 21) 사헌부사로서 김존성(金存誠) 등의 사건을 알린 적이 있었다.
1375년(우왕 1) 이인임(李仁任)을 해하려고 모의하였다 하여 귀양을 가게 되었고, 1385년 우왕이 태묘(太廟)에 분황(焚黃: 나라에서 관직이나 시호를 내리면 그 내린 명령을 누런 종이에 옮겨 써서 선조의 사당 앞에서 태우고 제사를 드리는 것)하는 제사를 지낼 때 동지밀직으로서 제사에 쓴 고기를 장부(張溥)에게 전하기도 하였다.
공양왕초에 밀직사에 이르렀으나, 1392년(공양왕 4) 이성계(李成桂)가 정몽주(鄭夢周)를 살해하고 정부를 개편할 때 경상도에 유배되었다가 조선개국과 함께 배소에서 장살(杖殺)되었다.
1372년(공민왕 21) 사헌부사로서 김존성(金存誠) 등의 사건을 알린 적이 있었다.
1375년(우왕 1) 이인임(李仁任)을 해하려고 모의하였다 하여 귀양을 가게 되었고, 1385년 우왕이 태묘(太廟)에 분황(焚黃: 나라에서 관직이나 시호를 내리면 그 내린 명령을 누런 종이에 옮겨 써서 선조의 사당 앞에서 태우고 제사를 드리는 것)하는 제사를 지낼 때 동지밀직으로서 제사에 쓴 고기를 장부(張溥)에게 전하기도 하였다.
공양왕초에 밀직사에 이르렀으나, 1392년(공양왕 4) 이성계(李成桂)가 정몽주(鄭夢周)를 살해하고 정부를 개편할 때 경상도에 유배되었다가 조선개국과 함께 배소에서 장살(杖殺)되었다.
[참고문헌]
高麗史
太祖實錄
太祖實錄
[집필자]
진성규(秦星圭)
대표명 | 최을의(崔乙義) |
성명 | 최을의(崔乙義) |
성명 : "최을의(崔乙義)"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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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