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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鄭滋)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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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민고(敏古)
호(號)청사(淸莎)
생년1515(중종 10)
졸년1547(명종 2)
시대조선전기
본관영일(迎日)
활동분야문신 > 문신
정유침(鄭惟忱)
조부정규(鄭潙)
증조부정자숙(鄭自淑)
처부권소(權劭)
외조부안팽수(安彭壽)

[상세내용]

정자(鄭滋)
1515년(중종 10)∼1547년(명종 2).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민고(敏古), 호는 청사(淸莎).

증조부는 증이조판서 겸 지의정부사(贈吏曹判書兼知議政府事) 정자숙(鄭自淑)이고, 조부는 내의원정(內醫院正) 정규(鄭潙)이고, 부친은 행평강현령(行平康縣令) 정유침(鄭惟忱)이다.

외조부는 병조좌랑(兵曹佐郞)판관(判官)을 지낸 안팽수(安彭壽)이고, 처부는 권소(權劭)이다. 동생은 우의정(右議政)인성부원군(寅城府院君) 정철(鄭澈)이고, 사위는 군수(郡守) 서희려(徐希呂)이다.

26세인 1540년(중종 35) 경자(庚子) 식년시(式年試) 진사(進士) 3등 44위로 합격하였고, 같은 해 식년시 병과(丙科) 21위로 문과에 급제한 후 벼슬은 정언(正言)을 거쳐 1545년(인종 1) 이조정랑(吏曹正郞)이 되었다.

그의 한 누이는 인종(仁宗)숙의(淑儀)가 되었고, 한 누이는 계림군(桂林君) 이류(李瑠)의 처(妻)가 되었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 의하면, 1545년 경기관찰사(京畿觀察使) 김명윤(金明胤)윤임(尹任)의 흉모에 대한 계림군 이유 등의 불궤(不軌)를 고변한 일에 당시 정랑 정자(鄭滋)윤임의 아내의 생질(甥姪)이 되는 관계로 이유의 숨은 곳을 신문(訊問)하는 공초를 당하였다. 소윤(小尹)에 의해 광양(光陽)에 유배되었는데, 1547년(명종 2) 양재역(良才驛) 벽서사건(壁書事件)으로 죄가 가중되어 경원(慶源)으로 이배(移配)되는 도중에 사망하였다.

1567년(선조 1) 신원(伸寃)되었다.

[참고문헌]

國朝文科榜目
성씨자료집(韓國文化硏究所, 1999)
CD-ROM 司馬榜目(韓國精神文化硏究院)
朝鮮時代雜科合格者總覽
朝鮮人名辭書

[집필자]

김동섭
수정일수정내역
2008-12-312008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