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효원(韓效元)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D55CD6A8C6D0B1468X0 |
자(字) | 원지(元之) |
호(號) | 오계(梧溪) |
시호(諡號) | 장성(章成) |
생년 | 1468(세조 14) |
졸년 | 1534(중종 29) |
시대 | 조선전기 |
본관 | 청주(淸州)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한증(韓曾) |
[상세내용]
한효원(韓效元)
1468년(세조 14)∼1534년(중종 29).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원지(元之), 호는 오계(梧溪). 사도시정 한증(韓曾)의 아들이다.
1489년(성종 20) 사마시에 합격하고, 이해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 사관(史官)에 등용된 뒤 승문원부정자‧예문관검열‧승문원주서‧홍문관박사가 되었다가 아버지의 상을 당하여 한때 사직하였다. 다시 봉상시주부로 복직, 병조좌랑‧수찬‧교리‧장령‧집의‧검상‧사인‧응교‧전한을 역임하였다. 이어서 함경도진휼경차관(咸鏡道賑恤敬差官)이 되어 굶주린 백성들을 구제하고 돌아와 사간을 거쳐, 1516년(중종 11) 황해도문폐어사(黃海道問弊御史)가 되었다가 직제학‧부제학‧동부승지를 역임하였다.
1520년 대사헌이 되고, 이어서 도승지‧병조참지‧병조참판이 되었다. 주청부사(奏請副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그뒤 경상도와 함경도의 관찰사, 공조판서‧좌참찬‧우의정‧영의정을 역임하였다. 시호는 장성(章成)이다.
1489년(성종 20) 사마시에 합격하고, 이해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 사관(史官)에 등용된 뒤 승문원부정자‧예문관검열‧승문원주서‧홍문관박사가 되었다가 아버지의 상을 당하여 한때 사직하였다. 다시 봉상시주부로 복직, 병조좌랑‧수찬‧교리‧장령‧집의‧검상‧사인‧응교‧전한을 역임하였다. 이어서 함경도진휼경차관(咸鏡道賑恤敬差官)이 되어 굶주린 백성들을 구제하고 돌아와 사간을 거쳐, 1516년(중종 11) 황해도문폐어사(黃海道問弊御史)가 되었다가 직제학‧부제학‧동부승지를 역임하였다.
1520년 대사헌이 되고, 이어서 도승지‧병조참지‧병조참판이 되었다. 주청부사(奏請副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그뒤 경상도와 함경도의 관찰사, 공조판서‧좌참찬‧우의정‧영의정을 역임하였다. 시호는 장성(章成)이다.
[참고문헌]
中宗實錄
國朝榜目
國朝人物考
燃藜室記述
國朝榜目
國朝人物考
燃藜室記述
[집필자]
이재범(李在範)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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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