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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자경(吳子慶)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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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길보(吉甫)
시호(諡號)양무(襄武)
생년1414(태종 14)
졸년1478(성종 9)
시대조선전기
본관보성(寶城)
활동분야무신 > 무신
공신호좌익원종공신(佐翼原從功臣)
공신호적개공신(敵愾功臣)

[상세내용]

오자경(吳子慶)
1414년(태종 14)∼1478년(성종 9). 조선 초기의 무신. 본관은 보성(寶城). 자는 길보(吉甫).

처음 별시위(別侍衛)에 속해 있다가 1454년(단종 2) 무과에 합격하여 내금위로 옮겨 북방군관(北方軍官)이 되었으며, 이듬해에는 세조의 즉위를 도와 좌익원종공신(佐翼原從功臣) 2등에 책록되었다.

1461년(세조 7) 첨지중추원사에 발탁되고 이어 함길도도진무(咸吉道都鎭撫)경원부사를 역임하였다.

1466년 무과 중시에 합격하고, 이어서 등준시(登俊試) 무과에 급제하여 가정대부(嘉靖大夫)에 오르고 대호군(大護軍)이 되었다.

1467년 5월 이시애(李施愛)의 난이 일어나자 내금위장(內禁衛將)으로서 구성군(龜城君) 준(浚)의 막하에 들어가 평정에 공을 세워 적개공신(敵愾功臣) 3등에 책록되고 보산군(寶山君)에 봉해졌다.

이어 첨지중추부사오위장(五衛將)에 임명되었고, 이듬해 평안중도절도사(平安中道節度使)가 되었으며 1469년(예종 1) 보산군에 다시 봉해졌다.

1473년(성종 4) 집을 수리하는 데 목공이 오지 않는다고 잡아다 장살한 혐의로 관직과 공신적을 삭탈당하고 전주로 귀양갔다가 공주로 부처되었다.

1475년 귀양에서 풀려났으며 이듬해 직첩을 돌려받고 다시 보산군에 봉해졌다. 시호는 양무(襄武)이다.

[참고문헌]

端宗實錄
世祖實錄
成宗實錄

[집필자]

차문섭(車文燮)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