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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난교(鄭蘭敎)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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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1863(철종 14)
졸년1943
시대조선후기
활동분야친일
정광렴(鄭光濂)

[상세내용]

정난교(鄭蘭敎)
1863년(철종 14)∼1943년. 조선 말기의 개화당‧친일인사. 정광렴(鄭光濂)의 아들이다.

1882년(고종 19) 3월에 도일하여 1884년 육군호산학교(陸軍戶山學校)를 졸업하고 귀국, 그해 8월에 남행부장(南行部將), 이어 좌영군사마(左營軍司馬)를 역임하고, 그해말 갑신정변 때 사관생도로서 개화독립당(開化獨立黨)에 가담하여 서재필(徐載弼)의 지휘를 받아 경우궁(景祐宮)내부경호에 힘썼으며, 정변이 실패하자 김옥균(金玉均)박영효(朴泳孝) 등과 함께 일본공사 다케조에(竹添進一郞)인천에 내려가 치토세마루(千歲丸)호로 일본에 망명하였다.

일본에서 유혁로(柳赫魯)신응희(申應熙) 등과 같이 김옥균박영효의 신변보호를 담당하였다.

우리나라에서 파견된 이른바 자객 지운영(池運永)이 소지한 암살도구인 비수와 비밀서류 등을 압수, 그 정체를 폭로하여 위험을 모면하게 하였고, 김옥균상해로 유인하여 보내고, 박영효를 암살하려던 자객 이일직(李逸稙)을 체포하여 일본경찰에 넘겼다.

동학농민군의 봉기와 청일전쟁을 계기로 1894년 12월 갑신정변 죄인으로서 사면되고, 이를 전후해서 귀국, 이듬해 2월 통정대부(通政大夫)정3품에 올랐으며, 군무아문참의(軍務衙門參議), 4월에 육군부령(陸軍副領)군부대신관방장(軍部大臣官房長), 1907년 11월에는 중추원부찬의(中樞院副贊議)를 역임하였다.

1910년 우리나라가 일제에 강제로 병탄되자 조선총독부 도참여관(道參與官)으로 충청북도 근무를 임명받았으며, 1927년에는 조선총독부 중추원참의가 되었다.

[참고문헌]

朝鮮最近政治史(李瑄根, 正音社, 1950)
大韓帝國官員履歷書(國史編纂委員會, 韓國史料叢書 17, 探求堂, 1972)
日本外交文書(日本外務省, 1955)

[집필자]

조항래(趙恒來)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