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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직(李逸稙)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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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미상)
졸년?(미상)
시대조선후기
활동분야변란 > 변란인

[상세내용]

이일직(李逸稙)
생졸년 미상.

갑신정변의 주역인 김옥균을 암살하기 위하여 1892년(고종 29) 민씨척족정권이 일본에 잠입시킨 자객. 갑신정변으로 인하여 큰 타격을 입은 민씨척족정권은 갑신정변실패 후 일본으로 망명한 김옥균박영효서광범 등의 정변주모자들을 대역죄인으로 규정하고 그들의 체포 및 송환을 여러 차례 일본정부에 요구하였다.

그러나 민씨정권의 송환요구는 만국공법상 망명정치범을 송환할 수 없다는 이유를 내세운 일본정부에 의하여 매번 거절당하였다. 이에 민씨정권은 1886년 지사 지운영(池運永)일본에 보내어 김옥균을 암살하려 하였으나 실패하였다.

1890년 김옥균북해도(北海島)로부터 내지귀환(內地歸還)의 허락을 받아 동경으로 돌아오자, 민씨정권은 다시 그를 암살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그리하여 1892년 5월 김옥균 암살을 위하여 민씨정권의 영수 민영소(閔泳韶)의 사주를 받은 이일직을 두목으로 하여 권동수(權東壽)재수(在壽)형제가 파견되었다.

일본으로 건너온 그는 풍부한 자금을 써가면서 일본정객을 통하여 김옥균박영효 등에게 접근하는 한편, 권동수재수 형제 외에 프랑스유학생으로 당시 일본에 머물고 있던 홍종우(洪鍾宇)를 포섭하여, 홍종우로 하여금 김옥균을 유인하여 암살하도록 사주하였다.

1894년 3월 경제적으로 궁핍한 생활을 하며 지내던 김옥균에게 일본에서의 부채를 상환해주고 상해로 가는 배삯까지 부담하였다.

또한, 중국에서의 활동자금으로서 5,000원짜리 수표까지 제공하였다. 그 수표는 상해 동북문 밖에 있는 천풍보호(天豊寶號)가 지불할 것으로 되어 있었으나, 실은 위조수표로서 김옥균을 유인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는 이 수표를 환금하기 위하여 자기 대리인으로 홍종우를 동반하도록 요청하였다. 그의 계략에 빠진 김옥균은 1894년 3월 23일 사이쿄마루(西京丸)로 일본 고베항(神戶港)을 출발하여 27일 상해에 도착하였고, 다음날 28일 이일직의 사주를 받은 자객 홍종우에게 암살당하였다.

김옥균의 암살에 성공한 뒤, 다시 권동수재수 형제와 일본인 가와쿠보(川久保常吉)를 매수하여 박영효 암살계획을 실행하려 하였으나 발각되었다. 그리하여 박영효의 동지 이규완(李圭完)정난교(鄭蘭敎) 등에게 잡혀 일본경찰에 인계되었다가 본국으로 압송되었다.

[참고문헌]

大韓季年史
朝鮮最近政治史(李瑄根, 正音社, 1950)
開化黨硏究(李光麟, 一潮閣, 1973)
近代韓日交涉史硏究(白鍾基, 正音社, 1977)
近代日鮮關係の硏究(田涉橋潔, 朝鮮總督府中樞院, 1940)
甲申政變의 좌절과 金玉均(姜在彦, 思想과 政策 4, 1984)

[집필자]

박맹수(朴孟洙)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