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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호(金鎭祜)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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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사형(士衡)
호(號)아산(鵝山)
호(號)만은(晩隱)
생년1847(헌종 13)
졸년1924
시대조선후기
본관울산(蔚山)
활동분야문신 > 문신
김의정(金義楨)
외조부김효원(金孝源)
저서『금초집』

[상세내용]

김진호(金鎭祜)
1847년(헌종 13)∼1924년. 조선 말기의 문신‧학자. 본관은 울산(蔚山). 자는 사형(士衡), 호는 금초(金樵)아산(鵝山)만은(晩隱).

부친은 동지중추부사 김의정(金義楨)이며, 모친은 경주김씨김효원(金孝源)의 딸이다. 어린 시절 변상철(邊相轍)고시경(高時景) 등에게 수학하였으며, 1876년(고종 13) 식년문과의 명경과(明經科)에 급제하여 승문원부정자가 되었다.

그뒤 가주서에 재임중 임금의 비답(批答)을 잘못 쓴 죄로 의금부의 심문을 받았으며, 1879년 특지(特旨)에 의하여 율봉도찰방(栗峰道察訪)이 되어 이듬해에 춘추관기사관을 겸임하면서 『음청일기(陰晴日記)』수찬(修撰)에 참여하였다.

1882년 성균관전적을 거쳐 사헌부지평을 지내다가 사임하였고, 2년 뒤 다시 사헌부지평에 재임하면서 대사간 윤구영(尹龜永), 집의 윤상익(尹相翊) 등과 함께 복제변경(服制變更)에 반대하는 상소를 하였다가 임금의 노여움을 사서 파직당하였다.

이듬해에 사간원정언으로 다시 서용되었고 1886년 홍문관부수찬으로 승진하였다.

그뒤 사헌부장령홍문관교리장악원정사복시정 등을 두루 역임하면서 강화유수 민영규(閔泳奎)강원감사 윤영신(尹榮信) 등에게 내리는 교서를 제진(製進)하였다.

저서로는 『금초집』 2권 1책이 있다.

[참고문헌]

金樵集

[집필자]

김동현(金東鉉)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