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하(趙成夏)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870C131D558B1845X0 |
자(字) | 순소(舜韶) |
호(號) | 소하(小荷) |
시호(諡號) | 문헌(文獻) |
생년 | 1845(헌종 11) |
졸년 | 1881(고종 18)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풍양(豊壤)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조병구(趙秉龜) |
생부 | 조병준(趙秉駿) |
출신지 | 서울 |
[상세내용]
조성하(趙成夏)
1845년(헌종 11)∼1881년(고종 18). 조선 말기의 문신.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순소(舜韶), 호는 소하(小荷). 서울 출신. 병조판서 조병준(趙秉駿)의 아들로 조병구(趙秉龜)에게 입양되었으며, 신정왕후(神貞王后) 조씨(趙氏)의 친정 조카이다.
1861년(철종 12)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 규장각대교‧홍문관부수찬을 거쳐 1864년 고종 즉위와 함께 동부승지에 특제(特除)되고, 이어 홍문관부제학이 되어 『철종실록』 편찬에 수찬관으로 참여하였다.
1865년 이조참의가 되었으나 이후 중용되지 못하고 있다가 민비세력과 결탁, 대원군 실각 후 1874년 평안도관찰사가 되었다.
1876년 지경연사(知經筵事)로 특탁(特擢)되고 이어 공조‧예조의 판서를 거쳐 세자시강원좌부빈객(世子侍講院左副賓客)이 되었다.
1879년 이조판서, 이어 판의금부사에 임명되고 1881년 의정부좌참찬에 이르렀다. 편서로 『금강산기(金剛山記)』가 있다. 시호는 문헌(文獻)이다.
1861년(철종 12)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 규장각대교‧홍문관부수찬을 거쳐 1864년 고종 즉위와 함께 동부승지에 특제(特除)되고, 이어 홍문관부제학이 되어 『철종실록』 편찬에 수찬관으로 참여하였다.
1865년 이조참의가 되었으나 이후 중용되지 못하고 있다가 민비세력과 결탁, 대원군 실각 후 1874년 평안도관찰사가 되었다.
1876년 지경연사(知經筵事)로 특탁(特擢)되고 이어 공조‧예조의 판서를 거쳐 세자시강원좌부빈객(世子侍講院左副賓客)이 되었다.
1879년 이조판서, 이어 판의금부사에 임명되고 1881년 의정부좌참찬에 이르렀다. 편서로 『금강산기(金剛山記)』가 있다. 시호는 문헌(文獻)이다.
[참고문헌]
哲宗實錄
高宗實錄
梅泉野錄
眉山文集
高宗實錄
梅泉野錄
眉山文集
[집필자]
이완재(李完宰)
성명 : "조성하(趙成夏)"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
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