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식(金奎軾)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AE40ADDCC2DDB1838X0 |
자(字) | 우약(雨若) |
시호(諡號) | 충헌(忠憲) |
생년 | 1838(헌종 4) |
졸년 | 1896(건양 1)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청풍(淸風)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김세호(金世鎬) |
[상세내용]
김규식(金奎軾)
1838년(헌종 4)∼1896년. 조선 말기의 문신. 본관은 청풍(淸風). 자는 우약(雨若). 김세호(金世鎬)의 아들이다.
1870년(고종 7)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1873년 형조참의‧영남위유어사(嶺南慰諭御史)를 역임하였고, 1879년과 1888년 두 차례에 걸쳐 이조참의를 역임하였다.
1889년 나주목사로 재직중 9월에 전라도 광양현(光陽縣) 지방에서 민란이 일어나, 관청사를 파괴하고 관장을 몰아낸 뒤 공금을 탈취하는 등 행패를 부리자, 9월 17일 안핵사(按覈使)로 임명되어 10월 14일 민란주동자 정홍기(鄭洪基)‧박상룡(朴尙龍) 등을 잡아 효수하였다.
1893년에는 병조참판, 1894년에는 한성부우윤, 1895년 지방관제개혁 뒤 인천부관찰사, 충주부관찰사 겸 충주부재판소판사에 임명되었다.
1896년 2월 유인석(柳麟錫)의 제천의진(堤川義陣)이 충주성을 함락하고 성안으로 들어오자, 남문으로 피신하던 중 중군 종사 오명춘(吳命春)에게 사로잡혀 처형되었다.
1870년(고종 7)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1873년 형조참의‧영남위유어사(嶺南慰諭御史)를 역임하였고, 1879년과 1888년 두 차례에 걸쳐 이조참의를 역임하였다.
1889년 나주목사로 재직중 9월에 전라도 광양현(光陽縣) 지방에서 민란이 일어나, 관청사를 파괴하고 관장을 몰아낸 뒤 공금을 탈취하는 등 행패를 부리자, 9월 17일 안핵사(按覈使)로 임명되어 10월 14일 민란주동자 정홍기(鄭洪基)‧박상룡(朴尙龍) 등을 잡아 효수하였다.
1893년에는 병조참판, 1894년에는 한성부우윤, 1895년 지방관제개혁 뒤 인천부관찰사, 충주부관찰사 겸 충주부재판소판사에 임명되었다.
1896년 2월 유인석(柳麟錫)의 제천의진(堤川義陣)이 충주성을 함락하고 성안으로 들어오자, 남문으로 피신하던 중 중군 종사 오명춘(吳命春)에게 사로잡혀 처형되었다.
[참고문헌]
承政院日記
高宗時代史(國史編纂委員會, 探求堂, 1970)
독립운동사자료집 1(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0)
독립운동사 1(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高宗時代史(國史編纂委員會, 探求堂, 1970)
독립운동사자료집 1(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0)
독립운동사 1(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집필자]
권석봉(權錫奉)
성명 : "김규식(金奎軾)"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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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