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화(趙容和)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870C6A9D654B1793X0 |
자(字) | 성교(聖交) |
호(號) | 청소(晴沼) |
시호(諡號) | 문헌(文憲) |
생년 | 1793(정조 17) |
졸년 | 1845(헌종 11)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풍양(豊壤)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조운익(趙雲翊) |
증조부 | 조재호(趙載浩) |

[상세내용]
조용화(趙容和)
1793년(정조 17)∼1845년(헌종 11).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성교(聖交), 호는 청소(晴沼). 좌의정 조재호(趙載浩)의 증손이며, 교리 조운익(趙雲翊)의 아들이다.
1813년(순조 13) 사마시에 합격하고, 1822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홍문관에 등용되었다.
1832년 이조참의를 거쳐 대사간‧강원도관찰사를 역임하였다.
1841년(헌종 7) 이조참판, 1844년 비변사제조(備邊司提調)‧형조판서, 이듬해 대사헌‧한성부판윤을 거쳐 형조판서에 이르렀다.
의용(儀容)이 괴위(魁偉)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저절로 공경하게 하는 마음을 일으키게 하였고, 성품이 온화하였으며, 문장에도 능하여 경사제가(經史諸家)의 전주(箋註)도 간명하게 잘 써서 거유(巨儒)라 일컬어지기도 하였다. 시호는 문헌(文憲)이다.
1813년(순조 13) 사마시에 합격하고, 1822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홍문관에 등용되었다.
1832년 이조참의를 거쳐 대사간‧강원도관찰사를 역임하였다.
1841년(헌종 7) 이조참판, 1844년 비변사제조(備邊司提調)‧형조판서, 이듬해 대사헌‧한성부판윤을 거쳐 형조판서에 이르렀다.
의용(儀容)이 괴위(魁偉)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저절로 공경하게 하는 마음을 일으키게 하였고, 성품이 온화하였으며, 문장에도 능하여 경사제가(經史諸家)의 전주(箋註)도 간명하게 잘 써서 거유(巨儒)라 일컬어지기도 하였다. 시호는 문헌(文憲)이다.
[참고문헌]
純祖實錄
憲宗實錄
國朝榜目
嘉梧藁略
憲宗實錄
國朝榜目
嘉梧藁略
[집필자]
이원균(李源鈞)
대표명 | 조용화(趙容和) |
성명 | 조용화(趙容和) |
시호 | 문헌(文憲) |
자 | 성교(聖敎), 조성교용화(趙聖交容和) |
성명 : "조용화(趙容和)"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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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2010-03-29 | 귤산(橘山) 이유원(李裕元) 撰 刑曹判書趙公謚狀을 참고하여 졸년 1845(헌종 11 을사) 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