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풍(金基豊)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AE40AE30D48DB1754X0 |
자(字) | 대백(大伯) |
생년 | 1754(영조 30) |
졸년 | 1827(순조 27)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청풍(淸風)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김안묵(金安黙) |
외조부 | 한사중(韓思重) |
[상세내용]
김기풍(金基豊)
1754년(영조 30)∼1827년(순조 27).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청풍(淸風). 자는 대백(大伯).
부친은 군수 김안묵(金安黙)이며, 모친은 참봉 한사중(韓思重)의 딸이다.
1783년(정조 7) 진사가 된 후 1785년 영릉(永陵)‧명릉(明陵)의 참봉을 거쳐 의금부동부도사‧통례원인의(通禮院引儀)‧형조좌랑‧형조정랑‧호조정랑 등을 거쳐 사도시‧사옹원‧장악원의 첨정과 돈녕부판관‧선혜낭청 등을 역임하였다.
외직으로는 삼등(三登)‧영유(永柔) 현령, 순안‧맹산현감, 함흥‧광주판관, 선산‧장성부사 및 임천군수‧평양서윤‧충주목사 등을 거쳤다. 지방수령으로 재직중에는 관개‧교량 등의 사업에 힘썼고 군역의 폐단이던 첨정(簽丁)을 방지하고 세를 가볍게 하였다.
특히 평양서윤을 지낼 때의 진휼사업은 높이 평가되고 있다.
부친은 군수 김안묵(金安黙)이며, 모친은 참봉 한사중(韓思重)의 딸이다.
1783년(정조 7) 진사가 된 후 1785년 영릉(永陵)‧명릉(明陵)의 참봉을 거쳐 의금부동부도사‧통례원인의(通禮院引儀)‧형조좌랑‧형조정랑‧호조정랑 등을 거쳐 사도시‧사옹원‧장악원의 첨정과 돈녕부판관‧선혜낭청 등을 역임하였다.
외직으로는 삼등(三登)‧영유(永柔) 현령, 순안‧맹산현감, 함흥‧광주판관, 선산‧장성부사 및 임천군수‧평양서윤‧충주목사 등을 거쳤다. 지방수령으로 재직중에는 관개‧교량 등의 사업에 힘썼고 군역의 폐단이던 첨정(簽丁)을 방지하고 세를 가볍게 하였다.
특히 평양서윤을 지낼 때의 진휼사업은 높이 평가되고 있다.
[참고문헌]
正祖實錄
梅山集
梅山集
[집필자]
박정자(朴定子)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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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