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진(趙尙鎭)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870C0C1C9C4B1740X0 |
자(字) | 이진(爾珍) |
시호(諡號) | 익정(翼貞) |
생년 | 1740(영조 16) |
졸년 | 1820(순조 20)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풍양(豊壤)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조재우(趙載遇) |
[상세내용]
조상진(趙尙鎭)
1740년(영조 16)∼1820년(순조 20).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이진(爾珍). 조재우(趙載遇)의 아들이다.
1773년(영조 49)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사간‧부응교를 거쳐 1780년(정조 4) 예조참의와 대사간을 역임하고, 이해 6월에 황해도관찰사로 나갔다.
1782년 대사성‧부제학에 오른 뒤 대사성‧부제학‧대사간 등을 번갈아 지냈으며, 1797년 일시 함경도관찰사로 나갔다가 돌아와 한성부판윤‧공조판서‧형조판서‧예조판서‧판의금부사 등을 지냈다.
1799년 8월 진하 겸 사은정사(進賀兼謝恩正使)로 청나라의 연경(燕京)에 갔다가 11월에 돌아와 청나라에서 보고 들은 정치현실을 상세히 보고하였다.
순조가 즉위한 뒤 형조판서‧한성부판윤‧판의금부사‧좌우참찬‧지중추부사‧판돈녕부사 등을 차례로 지냈고, 1813년(순조 13) 광주부유수(廣州府留守)로 나갔다가 1816년에 사직하였다. 시호는 익정(翼貞)이다.
1773년(영조 49)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사간‧부응교를 거쳐 1780년(정조 4) 예조참의와 대사간을 역임하고, 이해 6월에 황해도관찰사로 나갔다.
1782년 대사성‧부제학에 오른 뒤 대사성‧부제학‧대사간 등을 번갈아 지냈으며, 1797년 일시 함경도관찰사로 나갔다가 돌아와 한성부판윤‧공조판서‧형조판서‧예조판서‧판의금부사 등을 지냈다.
1799년 8월 진하 겸 사은정사(進賀兼謝恩正使)로 청나라의 연경(燕京)에 갔다가 11월에 돌아와 청나라에서 보고 들은 정치현실을 상세히 보고하였다.
순조가 즉위한 뒤 형조판서‧한성부판윤‧판의금부사‧좌우참찬‧지중추부사‧판돈녕부사 등을 차례로 지냈고, 1813년(순조 13) 광주부유수(廣州府留守)로 나갔다가 1816년에 사직하였다. 시호는 익정(翼貞)이다.
[참고문헌]
正祖實錄
純祖實錄
國朝榜目
純祖實錄
國朝榜目
[집필자]
김옥희(金玉姬)
대표명 | 조상진(趙尙鎭) |
성명 | 조상진(趙尙鎭) |
성명 : "조상진(趙尙鎭)"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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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