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신회(李身晦)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74C2E0D68CB1725X0 |
자(字) | 회지(晦之) |
호(號) | 가촌(佳邨) |
생년 | 1725(영조 1) |
졸년 | 1799(영조 23)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전의(全義)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이성익(李聖艗) |
모 | 부안김씨(扶安金氏) |
외조부 | 김일좌(金日佐) |
저서 | 『가촌문집』 |
[상세내용]
이신회(李身晦)
1725년(영조 1)∼1799년(정조 23).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회지(晦之), 호는 가촌(佳邨). 호조참판에 증직된 이성익(李聖艗)의 아들이며, 모친은 부안김씨(扶安金氏)로 현감 김일좌(金日佐)의 딸이다.
1759년 정시문과에 급제한 뒤 1771년 성균관전적에 제수되었다.
그뒤 사간원정언‧경성판관, 군자감‧종부시의 정을 역임하였다.
1784년(정조 8) 왕세자의 책봉을 거행하였으며, 자전(慈殿)‧자궁(慈宮)의 휘호를 지어 올리기도 하였다. 천주교와 양명학(陽明學) 등 당시 이단시되던 사상을 철저하게 배격함으로써 전통적인 가치를 수호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기도 하였다.
1790년 3개월 사이에 첨지중추부사‧동부승지 등 다섯 차례에 걸쳐 어명이 내렸으나 나아가지 않다가 1795년 승정원승지에 제수되어 2년 뒤 형조참판에 이르렀다. 관직에서 물러나서는 저술과 후진교육에 전념하였다.
저서로는 『가촌문집』 2권 2책이 있다.
1759년 정시문과에 급제한 뒤 1771년 성균관전적에 제수되었다.
그뒤 사간원정언‧경성판관, 군자감‧종부시의 정을 역임하였다.
1784년(정조 8) 왕세자의 책봉을 거행하였으며, 자전(慈殿)‧자궁(慈宮)의 휘호를 지어 올리기도 하였다. 천주교와 양명학(陽明學) 등 당시 이단시되던 사상을 철저하게 배격함으로써 전통적인 가치를 수호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기도 하였다.
1790년 3개월 사이에 첨지중추부사‧동부승지 등 다섯 차례에 걸쳐 어명이 내렸으나 나아가지 않다가 1795년 승정원승지에 제수되어 2년 뒤 형조참판에 이르렀다. 관직에서 물러나서는 저술과 후진교육에 전념하였다.
저서로는 『가촌문집』 2권 2책이 있다.
[참고문헌]
國朝榜目
佳邨文集
佳邨文集
[집필자]
김동현(金東鉉)
수정일 | 수정내역 |
---|---|
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