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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소권(蔡紹權)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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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異名)채수동(蔡壽童)
자(字)효중(孝仲)
호(號)졸옹(拙翁)
생년1480(성종 11)
졸년1548(명종 3)
시대조선중기
본관인천(仁川)
활동분야문신 > 문신
채수(蔡壽)

[상세내용]

채소권(蔡紹權)
1480년(성종 11)~1548년(명종 3).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인천(仁川). 초명은 김수동(金壽童)의 이름을 딴 채수동(蔡壽童)이다. 자는 효중(孝仲), 호는 졸옹(拙翁).

정국공신(靖國功臣) 지중추부사 채수(蔡壽)의 아들이다.

1504년(연산군 10) 진사가 되고, 1506년 별시문과에 정과로 급제하여 1511년(중종 6) 정언이 되었다.

1520년 홍문관부응교장령을 거쳐 사간사헌부집의홍문관 전한시독관(侍讀官)동부승지가 되고, 1523년 좌부승지에서 승지가 되었다.

다음해 대사간에서 홍문관부제학이 되어 시폐오조(時弊五條)를 상소, 정령의 잦은 변개에 따른 폐단과 사족(士族)의 전가사변(全家徙邊)의 옳지 않음과 정신이 어둡고 쇠약하여 늙고 병든 자가 감(監)‧시(寺)에 시위소찬(尸位素餐)하고 있음을 개탄하고, 사기(士氣)의 추향이 날로 낮아져서 문예(文藝)를 버리고 무거(武擧)에 나아가는 자가 점차 늘어나고 있으며, 향위(鄕圍: 鄕試의 試場)에서의 시험부정의 속출을 지적하였다.

1528년 청주목사가 되고, 1531년 경기도관찰사, 1533년 대사헌동지중추부사를 역임하고 다음해 한성부좌윤형조참판이 되었으며, 1535년 형조판서에 이르렀다.

김안로(金安老)의 처남이나 평소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으므로 김안로가 정유삼흉(丁酉三兇)으로 몰렸을 때 홀로 큰 화를 입지 않았다.

[참고문헌]

中宗實錄
國朝榜目
人物志
大東野乘

[집필자]

이종호(李棕浩)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2010-03-23해좌(海左) 정범조(丁範祖) 撰 刑曹判書蔡公諡狀 을 참고하여 생졸년 1480(성종 11)~1548(명종 3)을 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