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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각(尹慤)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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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여성(汝誠)
시호(諡號)충민(忠愍)
생년1665(현종 6)
졸년1724(경종 4)
시대조선중기
본관함안(咸安)
활동분야무신 > 무신
윤익상(尹翊商)

[관련정보]

[상세내용]

윤각(尹慤)
1665년(현종 6)∼1724년(경종 4). 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여성(汝誠). 진사 윤익상(尹翊商)의 아들이다.

1699년(숙종 25)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이 되고, 비변사낭관(備邊司郞官)도총부도사(都摠府都事)초계군수(草溪郡守) 등을 역임하고, 전주영장(全州營將)을 거쳐 전라도수군절도사에 이르렀다.

1710년 해구(海寇)의 발호가 심해지자 대신 이이명(李頤命)의 특천을 받아 1711년 금위중군(禁衛中軍)이 되어 방어에 공을 세웠다.

1712년에 함경남도 병마절도사가 되어 청나라 사신과 함께 백두산의 경계를 사정하고, 백두산 남쪽 산천의 형태를 그려 올렸으며, 1720년(경종 즉위)에 병조참판에 전임되고, 이어 삼도수군통제사를 거쳐 총융사(摠戎使)가 되어 상벌(賞罰)이 엄명하여 군기가 확립되었다.

1721년 신축화옥에 관련되어 절도(絶島)에 안치되어 여러 해 동안 구금되었고, 1724년 의금부에 투옥, 장살(杖殺)되었다.

영조가 즉위하여 그가 신원(伸寃)되자 그의 아내 김씨(金氏)는 “내가 진작 죽지 않은 것은 오직 하늘을 기다리기 위함이었다.”고 말하고는 드디어 단식하다 죽으니, 영조는 그녀의 절개를 표창하였다.

병조판서에 추증되었고, 시호는 충민(忠愍)이다.

[참고문헌]

景宗實錄
英祖實錄
承政院日記
陶庵集(李縡)

[집필자]

유병용(兪炳勇)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