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신(李正臣)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74C815C2E0B1660X0 |
자(字) | 방언(邦彦) |
호(號) | 송벽당(松蘗堂) |
생년 | 1660(현종 1) |
졸년 | 1727(영조 3)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연안(延安)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이봉조(李鳳朝) |
증조부 | 이명한(李明漢) |
외조부 | 홍주삼(洪柱三) |
[관련정보]
[상세내용]
이정신(李正臣)
1660년(현종 1)∼1727년(영조 3).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방언(邦彦), 호는 송벽당(松蘗堂). 이명한(李明漢)의 증손으로, 군수 이봉조(李鳳朝)의 아들이며, 모친은 전라감사 홍주삼(洪柱三)의 딸이다.
강릉참봉(江陵參奉)으로 1699년(숙종 25) 정시문과(庭試文科)에 병과로 급제, 환로에 나가 정언‧수찬‧응교‧장령‧헌납 등 삼사의 청요직(淸要職)을 두루 거친 뒤 1711년 동래부사로 외보(外補)되었으며, 다시 경직으로 돌아와 1716년 병조참의에 올랐고, 1721년 경종이 즉위한 뒤 호조참판에 배수된 뒤 사은부사(謝恩副使)로 연경에 다녀왔다.
돌아와 도승지에 임명된 그는 소론으로서, 조태구(趙泰耉) 등과 더불어 노론의 세력을 탄핵, 축출하는 데 앞장섰다.
그뒤 병조참판을 거쳐 외직으로 나가 경기도관찰사‧함경도관찰사를 역임하였다.
1724년 영조가 즉위하자 신임사화를 일으킨 주동자의 한 사람으로 지목되어 유배되었다.
서예에 뛰어났으며 해주에 있는 이관명(李觀命)이 찬한 「인조대왕탄강구기비(仁祖大王誕降舊基碑)」 음기(陰記)의 글씨가 남아 있다.
강릉참봉(江陵參奉)으로 1699년(숙종 25) 정시문과(庭試文科)에 병과로 급제, 환로에 나가 정언‧수찬‧응교‧장령‧헌납 등 삼사의 청요직(淸要職)을 두루 거친 뒤 1711년 동래부사로 외보(外補)되었으며, 다시 경직으로 돌아와 1716년 병조참의에 올랐고, 1721년 경종이 즉위한 뒤 호조참판에 배수된 뒤 사은부사(謝恩副使)로 연경에 다녀왔다.
돌아와 도승지에 임명된 그는 소론으로서, 조태구(趙泰耉) 등과 더불어 노론의 세력을 탄핵, 축출하는 데 앞장섰다.
그뒤 병조참판을 거쳐 외직으로 나가 경기도관찰사‧함경도관찰사를 역임하였다.
1724년 영조가 즉위하자 신임사화를 일으킨 주동자의 한 사람으로 지목되어 유배되었다.
서예에 뛰어났으며 해주에 있는 이관명(李觀命)이 찬한 「인조대왕탄강구기비(仁祖大王誕降舊基碑)」 음기(陰記)의 글씨가 남아 있다.
[참고문헌]
肅宗實錄
景宗實錄
英祖實錄
國朝榜目
淸選考
朝鮮金石總覽
景宗實錄
英祖實錄
國朝榜目
淸選考
朝鮮金石總覽
[집필자]
이문기(李文基)
명 : "정신(正臣)"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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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